고사성어

[ 오관참육장 - 五關斬六將 ]

우암 2024. 8. 9. 00:05

( 다섯 오 / 빗장 관 / 벨 참 / 여섯 육 / 장수 장 )

다섯 관문을 지나며 여섯 장수를 베다.  겹겹이 쌓인 난관을 돌파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 출 전 > 삼국연의

   조조(曺操)가 서주(徐州)를 공격하자 유비(劉備)는 도망하여 원소(袁紹)에게 의탁하였다.  하비성을 지키던 관우(關羽)도 조조의 공격을 받아 성을 빼앗기고 말았다. 관우는 항복을 권유하는 조조의 부하 장요(張遙)에게 3가지 조건을 받아들이면 투항하겠다고 말하였다. 

첫째, 자신은 조조가 아닌 한(漢)나라 황제에게 항복하는 것이며, 둘째, 자신을 모시고 잇는 유비의 두 부인에 대한 안전을 보장할 것이며, 셋째, 지금은 행방을 모르지만 유비가 있는 곳을 알면 언제든지 떠나겠다는 것이었다. 

 

조조가 이 조건을 받아들이자 관우는 항복하였다.  관우는 후에 백마(白馬) 전투에서 조조를 위하여 원소의 맹장 안량(顔良)과 문추(文醜)를 베는 공을 세웠다.  조조는 유비를 향한 관우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여포(呂布)가 타던 적토마를 주는 등 온갖 노력을 기울였지만 관우의 마음을 돌릴 수는 없었다.

얼마 뒤에 관우는 유비가 원소에게 의탁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조조를 떠났다.  동령관(東嶺關)에 이른 관우는 통행령을 전달받지 못하였다며 가로막는 공수(孔秀)를 베고 낙양(洛陽)으로 향하였다.

 

낙양관에 이르러서는 낙양태수 한복(韓福)과 아장(牙將) 맹탄(孟坦)을 베고 돌파하였고, 사수관(汜水關)에서는 변희(卞喜)를, 형양관(滎陽關)에서는 왕식(王植)을, 황하를 건너는 관문에서는 진기(秦琪)를 베고 유비가 있는 원소의 영토로 들어섰다. 나관중(羅貫中)은 이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관공은 관문을 다섯 곳을 지나며 여섯 명의 장수를 베었다(關公所歷關隘五處. 斬將六員). 후인이 시를 지어 탄식했다. ' 인수 걸어 놓고 금은보화 봉해 놓고 적토마 타고 천리를 달렸네. 청룡도 비스듬히 들고 다섯 관문을 나왔다네. 충의가 감개하여 천하를 찌르니 영웅이 이로부터 강산을 떨게 했네. 홀로 장수를 참하니 적수가 없어 고금의 문인들에 시 제목 남겼다네."

 

   이 이야기는 <삼국연의> 제27장에 나오는데, 관우가 다섯 관문을 지나면서 여섯 장수를 베었다는 말에서 '오관참육장'이 유래했으며, 관우가 격전을 벌이며 여러 관문을 통과하여 유비에게로 간 것처럼 겹겹이 쌓인 난관을 돌파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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