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성어
[ 오리무중 - 五里霧中 ]
우암
2024. 8. 16. 00:02
( 다섯 오 / 마을 리 / 안개 무 / 가운데 중 )
사방 5리가 온통 안개로 뒤덮여 있다. 문제가 생겼지만 해결 방법을 도무지 알 수 없거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를 비유하는 성어다.
< 출 전 > 후한서. 장패전

후한 화제(和帝) 때는 환관이나 친척들이 활개를 치며 정치를 좌지우지(左之右之) 하였다. 그때 장패라는 학자가 살고 있었는데, 화제가 죽은 뒤 등극한 상제(殤帝)가 8개월 만에 죽고 다시 안제(安帝)가 즉위했을 무렵 그는 시중의 지위에 있었다.
당시 정치적 실권은 화제의 황후인 등태후(鄧太后)와 오라비인 등즐(鄧騭)의 손아귀에 있었다. 나는 새도 떨어뜨릴 정도로 위세가 당당했던 등즐은 장패의 명성을 듣고 그와 교제를 하고자 청해 왔는데, 장패는 우물쭈물 하면서 대답을 회피하였다. 얼마 후 장패는 일흔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장패의 아들 장해(張楷) 역시 아버지를 닮아 학문이 뛰어났다. 그는 "춘추"와 "고문상서"에 능통해서 문하에 제자만도 100여 명에 달했다. 이런 명성 때문에 당시 조정의 환관이나 외척들은 서로 장해와 교분을 트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소인배들과의 교제를 몹시 꺼려했기 때문에 사양하다 지쳐 고향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당시 장관들이 그를 무재(茂才)로 천거해 지방 관리로 임명하려고 했지만 역시 거절하고 홍농산(弘農山) 깊은 골짜기로 은거해 버렸다.
그러자 많은 학자와 제자들이 그를 좇아 이곳으로 와서 갑자기 시장이 생길 지경이 되어 화음산(華陰山) 남쪽 기슭에는 공초시(公招市)가 생기기까지 했다.
안제가 죽고 순제(順帝)가 즉위하자 순제는 장해의 뛰어난 덕성을 듣고 그를 예를 갖춰 초빙하였지만 역시 병을 핑계로 해서 나아가지 않았다.
장해에게는 학문뿐 아니라 도술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특히 오리무(五里霧)라 불리는 방술(方術)을 써서 사방 오리 안을 온통 안개로 자욱하게 덮이게 만드는 재주가 뛰어났다. 역시 방술의 명인으로 삼리에 안개를 일으켰던 배우(裵優)라는 사람이 소문을 듣고 제자가 되고자 그를 찾아왔지만 장해가 안개를 일으켜 몸을 감추었기 때문에 결국 만나지 못하고 돌아가기도 했다.
이 이야기에서 오리무중이란 성어가 생겨났다. 원래는 '오리무'였는데 나중에 중이 첨가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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