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성어

[ 오설상재 - 吾舌尙在 ]

우암 2024. 8. 23. 00:01

( 나 오 / 혀 설 / 아직 상 / 있을 재 )

" 내 혀가 아직 살아 있소? "라는 뜻으로, 비록 몸이 망가졌어도 혀만 살아 있으면 뜻을 펼 수 있다는 말이다.

< 출 전 > 동주열국지(東周列國志),  사기.

   전국시대 위나라의 모사 장의(張儀)가 출세하기 전의 일이다.  장의가 도둑 혐의를 입고 매를 맞아 반쯤 죽어서 돌아왔을 때 그의 아내를 보고 "내 혀가 아직 있느냐?"라고 물은 데서 비롯된 말이다.  혀만 성하면 그까짓 팔다리쯤 병신도 되어도 그리 걱정될 건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사업에 실패했을 때, 자기가 가장 소중히 아는 한 가지만이라도 남아 있으면 그것에 자기의 희망을 걸고 스스로 위로하는 뜻으로 쓰이곤 한다.

   전국(戰國)의 세상도 한창인 기원전 4세기 말의 일이다. 위(魏)나라에 장의라는 가난한 사람이 있었다. 비록 가난하기는 했으나 남보다 뛰어난 재능과 수완과 완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 당시는 지혜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출세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든지 있었다.

 

   그것은 어느 나라고 뛰어난 인물을 등용하여 나라를 부강케 하고 타국을 꺾어버리려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가난뱅이 장의도 입신출세의 야망을 품고 있었다.  그런 까닭에 귀곡(鬼谷)이라는 권모술수에 능한 선생에게 글을 배웠는데, 장의의 영민함은 다른 제자들의 혀를 말 정도로 뛰어났다.

   그의 라이벌 소진(蘇秦)이 막 득세를 했을 당시, 그는 아직 뜻을 얻지 못하고 초나라 재상 소양(昭陽)의 집에서 문객노릇을 하며 지내고 있었다.

 

    그 때 소양은 위나라와 싸워 크게 이긴 공로로 위왕(威王)으로 부터 유명한 화씨벽(和氏壁)을 하사 받았었는데 그는 그 구슬을 언제나 가지고 다녔다.

   어느 날, 소양이 적산(赤山) 밑에 있는 연못가의 누대에서 사방에서 찾아온 귀한 손님들과 수행원 등 백 명 가까운 사람을 데리고 술자리를 베푼 일이 있었다.  이때 손님들은 소양에게 화씨벽을 구경시켜 달라고 청했다.

 

   소양은 흥이 한창 나 있는 참이라 구슬상자를 가져오게 해서 구경을 시켰다.  한창 구경들을 하며 칭찬을 하고 잇는데, 못에서 큰 고기가 물 위로 높이 뛰어올랐다.  소양과 뭇사람들의 시선이 그리로 쏠리고 있는 순간 어느 누구의 짓인지 구슬이 온데 간데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래서 결국 가장 옷이 허름하고 평소에 남과 잘 어울리지 않는 장의가 누명을 쓰고 죽도록 매를 맞게 되었다.

   장의가 거의 죽게 되자, 그제야 하는 수 없이 집으로 돌려보내 주었다.  옷이 피투성이가 되어 업혀 돌아온 장의를 아랫목에 눕힌 아내는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다.

 

   " 당신이 글을 읽고 유세만 하지 않았던들 이런 욕을 당했겠소?"

   그러자 장의는 아내를 보고 말했다.

   " 내 혀를 보오.  아직 그대로 있는가? ( 視吾舌  尙在下 ) "

 

   아내가 어이가 없어 웃으며, "혀야 있지요" 했더니  장의는, "그럼 됐소" 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의 앞부분은 <동주열국지>에서 옮긴 것이고, 아내와의 대화는 <사기. 장의열전에 잇는 것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이것을 마지막 고비로 장의는 비로소 혀의 위력을 발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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