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성어
[ 일망타진 - 一網打盡 ]
우암
2025. 6. 16. 00:03
( 한 일 / 그물 망 / 칠 타 / 다할 진 )
'그물을 한 번 던져 있는 고기를 다 잡는다'는 뜻으로, 범인을 한꺼번에 모조리 잡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 출 전 > 위태(魏泰) 동헌필록(東軒筆錄)

송나라 인종(仁宗) 때의 일이다. 원래 송나라는 태조 이래로 외국 정벌을 하면 번번이 실패하자 4대 황제인 인종은 북방의 거란족이나 남방의 안남(安南) 등에 대해 회유책을 써서 변방을 안정시키는 정책을 폈다.
그러나 그의 국내 정치는 대단히 뛰어나서 백성들은 근심 없이 살 수 있었고 실력 있는 인재들이 안팎으로 널리 등용되었다. 그리고 학술과 예술을 장려해서 한나라 문제(文帝)와 더불어 어진 임금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그의 신하는 모두 재능이 출중했기 때문에 저마다 자기의 이론을 가지고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때문에 인재의 양에 비례해서 의견도 가지각색으로 나눠지게 되어 조장에서는 입씨름이 끓일 날이 없었다.
당대의 명신으로 지금도 이름을 남기고 있는 한기(韓琦)와 구양수(歐陽脩), 사마광(司馬光), 주돈이 같은 정치가들이 명론을 내세워 탁설을 벌인 결과 정신(鼎臣)들은 두 개의 당파로 나뉘어 대립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두 당이 서로 번갈아 집권하게 되어 마치 정당 정치를 하는 듯한 양상이 되어 버렸다.
때문에 처음에는 어진 임금을 보좌하여 뛰어난 신하들이 나라를 잘 다스려서 이 시기를 "경력(慶歷)의 치세"라고 칭송하였지만, 나중에는 "경력의 당의(黨議)라 해서 오히려 비난을 샀던 것이다.
이럴 즈음에 두연(杜衍)이라는 사람이 재상이 되었다. 그런데 당시 관례로 보면 임금이 일일이 신하들과 의논하지 않고 인사 문제를 처리해도 대개 그대로 시행 되었다.
그런데 세로 재상이 된 두연은 이런 관례는 정치 기강을 흐리게 한다는 이유를 들어 정치 기강을 흐리게 한다는 이유를 들어 황제의 명령서를 그냥 가지고 있다가 10통쯤 쌓이면 그대로 황제에게 되돌려 보내는 것이었다.
어느 날 황제는 구양수를 만난 자리에서 이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였다.
" 내가 대신들과 의논을 하지 않고 쪽지를 내려 보내는데 그것을 재상 두연이 묵살한다는 사실을 다들 알고 계시오?"
이렇게 되자 당장 문제가 야기 되었다. 아무리 재상이라고 해도 두연의 그 같은 행위는 임금의 성지(聖旨)를 꺾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곳곳에서 두연을 비방하는 여론이 들끓게 되었다.
때마침 두연의 사위 소순흠(蘇舜欽)이 공금을 횡령했다는 사실을 조사한 사람이 어사(御史)의 장관인 왕공진(王拱眞)이었다. 감히 재상을 상대로 직접 어찌할 도리가 없어 잔뜩 벼르고 있던 차에 이 같은 사실을 알아낸 왕공진은 곧바로 소순흠을 잡아 족치기 시작했다. 이에 여러 사람의 연루자가 체포되어 취조를 당하는 바람에 두연은 고작 70여 일 만에 대상의 직위에서 사임하고 말았다.
그때 그의 사위를 비롯해서 일가친척 여러 명을 체포했을 때였다. 왕공진은 자신이 한 일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 내가 일망타진(一網打盡)했다네."
이 성어는 직접적으로 한꺼번에 그물을 펴서 많은 물고기를 모조리 잡았다는 의미로 해석되지만, 성어가 된 연유로 미루어 보면 범안들은 모조리 검거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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