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서갱유 - 焚書坑儒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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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서갱유 - 焚書坑儒 ]

고사성어

by 우암 2023. 6. 23.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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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사를 분 / 책 서 / 구덩이 갱 / 선비 유 )

 책을 불 사르고 유생(儒生)들을 산 채로 구덩이에 묻어 죽임.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발본색원하는 폭정을 비유하여 일컬음.

< 출 전 > 사기. 진시황본기

  진시황 34년 시황은 함양궁에서 술자리를 베풀었다.  이때 군현제도를 찬양하는 복야 주청신(周靑臣)과 봉건제도의 부활을 주장하는 박사 순우월(淳于越)이 시황 앞에서 대립된 의견을 놓고 싸웠다. 시황은 이 문제를 신하들에게 토의하게 했다. 승상 이사(李斯)는 순우월의 의견을 몹시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진시황의 독재 뒤에는 이사의 이기적인 칼날이 언제나 빛나고 있었다. 이사는 선비들의 그런 태도는 임금의 권위를 떨어뜨리고 당파를 조성하는 결과를 가져오므로 일절 금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구체적으로 이 같은 안을 제시했다.

 

  " 사관(史官)이 맡고 있는 진나라 기록 이외의 것은 모두 태워 없앤다. 박사가 직무상 취급하고 있는 것 이외에 감히 시서(詩書)나 백가어(百家語) 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모두 고을 수령에게 바쳐 태워 없앤다.  감히 시서를 말하는 이 있으면 모두 시장바닥에 끌어내다 죽인다. 옛것을 가지고 지금 것을 비난하는 사람은 일족을 모두 처형시킨다. 관리로서 이를 알고도 검거하지 않는 사람도 같은 죄로 다스린다.

금령이 내린 30일 이내에 태워 없애지 않는 사람은 이마에 먹물을 넣고 징역형에 처한다. 태워 없애지 않는 것은 의약(醫藥). 복서(卜筮). 종수(種樹)에 관한 책들이다. 만일 법령을 배우고자 할 때는 관리에게 배워야 한다."

 

  시황은 이사의 말을 채택하여 실시케 했다. 이것이 "분서(焚書)"다.  당시의 책은 오늘날과 같이 종이에 인쇄하여 대량으로 생산하는 것이 아니고, 대쪽(竹片)에 붓으로 써 놓은 것이며 한번 잃으면 또다시 복원할 수 없는 것도 많았다. 여하튼 인간의 문화에 대한 반역으로서 단연코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이듬해인 35년에는, 진시황이 불로장생을 원한 나머지 신선술을 가진 방사(方士)들을 모았다.  그중에서도 특히 우대를 한 것이 후생(侯生)과 노생(盧生)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진시황의 처사에 불안을 느꼈는지 시황을 비난하고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격노한 시황에게 정부를 비난하는 수상한 학자가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시황은 어사를 시켜 학자들을 모조리 잡아다가 심문했다. 사실상 학자들은 비난한 일이 없지도 않은 터라, 서로 책임전가를 하며 자기만 빠지려 했다.

 

  그 결과 법에 저촉된 사람이 460여 명이나 되었다. 이들은 모두 함양 성 안에 구덩이를 파고 묻게 했다. 널리 천하에 알려 다시는 임금이나 정부가 하는 일을 비판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것이 갱유(坑儒)다.  왕정의 기초를 공고히 하려는 시황제의 가법혹정(苛法酷政)은 "분서"나 "갱유" 같은 사상 드물게 보는 폭거를 저지른 것이다.

  그러나 이 "분서갱유"를 대단치 않은 사건으로 보는 학자도 잇다. 죽은 사람은 460명뿐 이었고, 책들은 사실상 참고를 위해 몇 벌씩 정부 서고에 보관되어 있었다. 그것을 불살라 버린 것은 실상 항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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