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락석출 - 水落石出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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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락석출 - 水落石出 ]

고사성어

by 우암 2024. 1. 7.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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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 수 / 떨어질 락 / 돌 석 / 날 출 )

일이 진상이 드러나다.

  " 물이 빠지고 나니 돌이 드러난다 "라는 뜻으로, 어떤 일이 흑막(黑幕)이 걷히고 진상이 드러남을 비유하는 말이다.

< 출 전 > 소식(蘇軾). 후적벽부(後赤壁賦)

 

    소식(蘇軾)의 자는 자담이고 호는 동파거사(東坡居士)며, 송나라 사천미산 사람으로 명문 학자 소순의 큰아들이었으며 인종(仁宗) 가우 때 중진사를 지냈다.

 

    신종(神宗)이 왕으로 있을 때 왕안석이 변법정책을 쓴 일이 있었다. 이때  소식이 새로운 법을 반대하고 나서 왕안석과 어지간히 논쟁을 펼쳤다.  당시 왕안석(王安石)이 신종의 총애를 받고 있는터라 소식이 그 세력에 눌려 호북 황주로 좌천당해 단련부사의 직책을 가졌다.  그가 동파 지방에서 조그만 집을 짓고 살았기 때문에 소동파라 불렸고 스스로 동파거사로 자처하였다.

 

    소동파는 산수의 경치를 좋아해서 항상 자연 속에 한가로이 시간을 보냈다.  적벽(赤壁)은 삼국시대에 동오와 촉한 연합군이 조조를 함락시켰던 곳이다. 

그러나 적벽은 호북에 세 군데나 있다.  한 곳은 한수 옆 경릉의 동쪽이고,  한 곳은 제안 아래에 있는 황주이며,  또 한 곳은 강하 서남방 백리 떨어진 곳으로 오늘의 한양 현을 말한다. 

 

이 강하 서남방 백 리에 있는 적벽은 조조가 패전을 한 곳이고,  동파가 즐겨 놀던 적벽은 황주 한천 문 밖에 있는 곳으로,  조조가 유비와 주유의 연합군에 패한 곳이 아니다.

 

    동파가 전. 후 두 편의 적벽부를 지었는데 그것은 이름만 빌린 것인 즉 이름은 같되 다른 곳이었다.  그러나 그의 넘친 재능과 유창한 문필로 자재 다능하게 이곳의 경치를 묘사하여 후세의 사람들에게 이곳에 가보고 싶은 마냥 그리운 심정을 불러일으키게 했다.

 

    늦가을이 되어 다시 찾은 적벽의 경관은 이전과는 또 달랐다.  그리하여 소동파는 이렇게 묘사하였다.

  " 흐르는 강물 소리, 깎아지른 천 길 절벽, 우뚝 솟은 산과 작은달, 물이 빠져 드러난 바위, 해와 달이 몇 번이나 바뀌었다고 이리도 강산을 알아볼 수 없단 말인가. ( 江流 有聲.  斷岸千尺.  山高月小.  水落石出.  曾日月之幾何.  而江山不可復識矣. )"

 

  "수락석출"은 소동파가 적벽부 속의 늦가을 풍경을 가리킨 말이었으나 후세 사람들이 진상이 드러나 의혹을 푼다는 뜻으로, 어떤 사연을 똑똑히 안 다음 그 진상을 밝히는 것을 "수락석출"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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