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송(南宋)이 멸망할 때 원(元) 나라에 끝까지 저항했던 신하로 문천상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원래 문관 출신인데, 여러 직책을 거쳤지만 당시 실력 자였던 가사도(賈似道)와 불화가 생겨 은둔생활도 자주 했다.
원나라 군대가 장강을 건너오자 가사도는 실각했고, 문천상은 자신이 다스리고 있던 평강(平江)에서 군대를 일으켜 싸움에 나섰지만 상황은 점점 더 불리하게 전개되었다.
이듬해 정월, 원나라의 재상 백안(伯眼)의 지휘 아래 있던 적군이 임안(臨安)까지 밀어닥쳤다. 진의중(陳宜中)을 비롯한 장세걸(張世傑) 등의 중신들은 모두 달아났고 문천상은 화의를 맺으라는 명령에 따라 백안이 있는 곳으로 갔다가 억류되고 말았다.
그때 송나라가 항복하겠다는 문서가 전해졌고 문천상은 북방으로 쫓겨났는데, 기회를 엿보던 그는 경구(京口)에서 탈출하였다. 그리고 다시 남송을 일으킬 계획으로 단종(端宗)의 정권에 참여했지만, 이 또한 원에게 패배하고 문천상은 포로가 되었다. 이로써 남송 왕조는 완전히 멸망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후 문천상은 북경의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원나라는 남송 왕조를 위해 끝까지 절개를 지킨 그를 귀순시키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회유하였다. 심지어 재상의 자리까지 약속했지만 그는 끝내 굴복하지 않고 항거하다가 3년 동안의 옥살이 끝에 처형되고 말았다.
그는 옥살이 할 때의 심경을 <정기가 正氣歌>라는 시에 담기도 하였다. 처형을 당하면서 그는 형리(刑吏)를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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