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욕부중 - 忍辱負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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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욕부중 - 忍辱負重 ]

고사성어

by 우암 2025. 5. 15.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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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을 인 / 욕되게 할 욕 / 질 부 / 무거울 중 )

치욕을 참아 가며 중대한 책임을 지다.

< 출 전 >  삼국지

   형주(荊州)에 주둔해 있던 관우(關羽)는 조조(曺操)의 위(魏) 나라를 공격하여 번성(樊城) 탈취를 눈앞에 둔 상황에서 동오(東吳)의 기습을 받아 싸움에 지고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221년 촉주(蜀主) 유비(劉備)는 조운(趙雲) 등 명장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군대를 이끌고 오(吳) 나라 징벌에 나섰다.

전략적 요충지인 형주를 되찾고, 관우의 복수를 하기 위한 출병 이었다. 오나라의 손권(孫權)은 유비에게 사절을 보내 화친을 청하였지만 유비는 이를 거절했다.

 

   손권은 육손(陸孫)을 대도독에 임명하고 5만 군사로 대항했다. 유비는 무협(巫峽)에서 이릉(夷陵)에 이르기 까지 장강 남쪽의 600여 리 되는 산 위에 수십 개의 병영을 설치 하였다.

오나라 손환(孫桓)이 선봉에 서서 이도(夷道)에서 따로 유비를 공격하다가 유비의 군대에 포위되어 육손에게 원병을 요청했다. 육손이 원병 보내는 것을 허락하지 않자 여러 장군들이 말했다. " 손환은 안동(安東)의 공족(公族)으로 포위를 당해 곤경에 처했는데 어째서 구하지 않는 것이오?"

 

육손이 말했다. "안동은 군사들의 마음을 얻고 있고, 성도 견고하고 군량이 충분하므로 걱정할 것이 없소.  내 계책이 펼쳐지면 안동을 구하지 않아도 그곳의 포위는 자연스럽게 풀릴 것이오."  당시 육손의 휘하에 있던 장군들 가운데에는 손책 (孫策) 때의 노장도 있었고, 공실귀척(公室貴戚)도 있어 모두 자긍심이 높아 육손의 지휘를 따르려 하지 않았다.

 

   " 육손은 손에 검을 쥐고 말했다.  "유비는 천하에 알려진 사람으로서 조조마저도 그를 두려워하고 있소.  지금 그가 우리 경기에 잇으니 바로 우리의 강한 적수인 것이오.  제군들은 은혜를 입었으니 마땅히 서로 화목하여 적을 물리쳐 받은 바 은혜에 보답해야 할 것이오. 

내 비록 서생이지만 주상의 명을 받았소. 국가가 제군들을 불편하게 하면서 까지 나의 지시에 따르라고 하는 것은 내가 취할 만한 부분이 있어서 능히 굴욕을 참고 중요한 임무를 맡을 수 있으리라 여겼기 때문이오.  - - -  - -  군령은 태산과 같으니 범하지 않도록 하시오.  (  能忍辱負重故也.  - - -  軍令有常.  不可犯矣.)"

 

   육손의 말에 모두들 진정이 되었고 더 이상 명령을 듣지 않는 일이 없게 되었다. 육손은 장장 7,8개월을 싸우지 않고 장기전으로 나갔다가 촉나라 군대가 지쳤을 때 바람을 이용하여 불을 놓아 유비의 군대를 대파했다. 유비는 싸움에 진 후 백제성(白帝城)으로 피신했다가 얼마 후에 세상을 뜨고 말았다.

 

이 이야기는 <삼국지. 오서. 육손전>에 나온다.  이 전쟁을 '이릉의 전투'라고 하는데, '관도(官渡)의 전투', '적벽대전'과 더불어 <삼국지>의 삼대전역'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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