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경제(景帝) 때 사람 두영은 효문제의 황후(두태후)의 사촌오빠의 아들이자 대장군 지위에 있는 실력자로서 각지의 반란을 진압한 공으로 위기후의 관작까지 받아 조정 대신들이 모두 그의 앞에서 굽실거렸다. 이때 전분(田粉)은 미미한 출신으로서 처음에는 두영의 집에 드나들면서 아첨을 일삼았으나, 아름다운 누이가 황후가 되는 바람에 벼락출세를 하여 태중대부의 벼슬을 얻었다.
더구나 경제가 죽고 무제가 즉위한 후에는 무안후에 봉해지고 마침내는 승상의 자리에 올랐다. 그 권세는 두영을 능가하게 되었다. 따라서 예전에는 두영에게 얼씬거리던 그 많은 조정 대신들이 이번에는 전분한테 물려 들어 갖은 아첨을 떨었다.
강직하고 호걸풍인 장군 관부는 그런 꼴이 몹시 눈에 거슬렸다. 그는 권세를 잃은 두영과 여전히 친하게 지내며 같이 술잔을 나누고 세상일을 한탄하곤 했다. 어느 날 승상 전분이 연(燕) 나라 왕 유가의 딸을 첩실로 들이게 되어 그의 집에서 성대한 잔치가 벌어졌다.
두영과 관부 역시 승상의 잔치에 예의상 참석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 자리에서 그만 불상사가 일어나고 말았다. 전분이 잔을 들며 술을 권했을 때는 참석자들이 모두 엎드려 축하와 감사를 표하면서 각자 자기 잔을 들었으나, 두영이 손님의 입장에서 전분을 축하하는 의미로 건배를 제의했을 때는 대부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미 심사가 뒤틀려 있던 관부는 잔을 들고 전분 앞에 걸어가 직접 건배를 제의했다. 무안후는 자리에 무릎을 붙인 채 말했다.
" 술잔이 차면 마실 수가 없는데 - - - - - "
관부는 마음 속으로 괘씸했지만, 억지 웃음을 지으며 잔을 권했다.
"장군은 귀인이시니 넘치게 드셔야지요 "
하지만 무안후는 끝내 술을 마시지 않았다. 무안을 당한 관부는 술잔의 순서에 따라 임여후에게 갔다. 임여후는 마침 정불식과 귓속말을 나누고 있었는데, 그 역시 자리에서 꿈쩍도 않았다. 관부는 분을 못 참고 임여후에게 욕을 퍼부었다.
" 어찌 이렇게 무례할 수가 있단 말이냐 ! "
그 바람에 잔치는 엉망이 되었고, 사람들은 슬금슬금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영은 관부를 달래어 돌아 가도록 했으나, 분노한 전분이 관부를 붙잡아 투옥해 버렸다. 두영은 집에 돌아 가자마자 황제에게 상소를 올렸다.
"관부는 나라를 위해 세운 공이 큰 장군입니다. 무안후의 집에서 잇었던 소란은 예에 어긋난 사람들에게 발단의 책임이 있다고 사료 됩니다. 그런데도 무안후는 개인 감정으로 관부를 포박했습니다."
무제는 다음날 조회 자리에서 그 문제를 들어 잘잘못을 가리려고 했다. 그러나 두영과 전분이 각각 자기주장만 내세울 뿐 아니라 바른 증언을 해야 할 대소 신료들도 어정쩡한 태도를 보였으므로 무제는 화를 버럭 내며 들어가 버렸다. 이 일이 왕태후의 귀에 들어가자, 그녀는 발끈해서 아들인 무제를 찾아가 따졌다.
" 가당찮은 놈들이 이 어미와 내 집안을 욕보이려고 하는데, 성상께서는 뒷짐 지고 구경만 하겠다는 것이오?"
난처해진 무제는 하는 수 없이 형식적인 탄핵절차를 밟아 두영을 "주군기망죄"로 투옥해 버렸다. 다급해진 두영은 생전의 경제로 부터 "만약 공에게 불리하고 불편한 일이 생길 경우에는 언제나 황제에게 주상하라" 하는 유조(遺詔)를 받고 있었다. 그래서 두영은 조카에게 유조의 내용을 황제에게 아뢰게 하여 다시 한 번 알현할 기회를 달라고 청했다.
글이 올라오자, 황제는 상서(尙書)로 하여금 조사해 보도록 했으나, 선제가 그와 같은 유조를 두영에게 주었다는 확실한 증거가 없었다. 그 유조는 두영의 집에만 간직되어 있었고 가승(家丞)이 봉인해 두고 있었다. 그래서 두영은 선제(先帝)의 조서를 위조 하였으므로 그 죄는 기시(棄市)에 해당한다는 탄핵을 받게 되었다.
더구나 자기를 알아주던 유일한 친구인 관부와 그 가족이 처형되었다. 그 후 한참 뒤 그 소식이 두영의 귀에 들어가자 두영은 노하여 중풍을 앓게 되엇다. 음식도 끊고 죽으려 하였다. 그러나 황제가 두영을 죽일 생각이 없다는 말을 듣자 다시 식사를 했고 병도 치료 햇다. 조정에서는 그를 죽이지 않는다는 데로 결정 되엇다. 그러자 두영을 비방하는 근거도 없는 유언비어가 떠돌아 그 말이 주상의 귀에까지 들어 갔다. 그 때문에 죄의 판결을 받아 위성에서 기시(棄市) 되었다.
이듬해 봄, 무안후 전분이 병상에 눕게 되었는데 헛소리로, "내가 나빴어 ! " 하며 자신의 죄를 사과했다. 귀신을 보는 무당에게 보였더니, 두영과 관부가 그를 지키고 서서 죽이려는 것이 보인다고 했는데 그는 마침내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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