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구를 편리하게 쓰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넉넉하게 하여, 국민의 생활을 나아지게 함. 백성들의 일상적인 생활에 이롭게 쓰이고,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야말로 실천적인 학문의 내용이라는 뜻이다.
< 출 전 > 서경. 대우모(大禹謨) 편
"백성의 덕을 바르게 하고 백성들이 편하게 쓰도록 하고 백성의 생활을 여유 있게 하는 세 가지를 조화 시키십시오 ( 正德利用厚生唯和)"
"이용(利用)"이란 백성의 쓰임에 편리한 것으로서 공작 기계나 유통수단 등을 의미하고, "후생(厚生)"은 의식 등의 재물을 풍부하게 하여 백성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다.
유학은 구체적인 현실에서 경세제민을 통해 백성의 삶을 풍요롭고 바람직하게 만드는 것을 정치의 이상으로 삼기 때문에,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문제에 못지않게 경제적인 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가진다.
공자가 교육에 앞서 백성의 부서(富庶)를 말한 것이나 맹자가 백성에게 항산( 恒産 : 살아갈 수 있는 일정한 재산, 일정한 생업)을 마련해 주는 것을 왕도정치 실현의 기반으로 지적한 것은 모두 그 실례이다.
후대로 오면서 유학의 관심이 윤리적, 도덕적인 정덕(正德)의 측면에 기울면서, 이른바 덕본재말(德本財末). 중의경리(重義輕利) 등의 의론이 나와 재물이나 이익을 경시하는 듯한 흐름이 생겨났다.
전통적으로는 정덕(正德)을 이용. 후생의 앞에 놓아 반드시 덕성의 실천으로부터 정치상의 실천에 도달한다는 인식이 지배적 이었다. 즉 이용후생의 문제는 정덕 이후의 문제로서 부차적으로 취급된 것이었고 제1차적인 관심은 정덕의 문제에 집중되었던 것이다.
유학의 이러한 경향은 특히 성리학에 집중되었던 것이다.
유학의 이러한 경향은 특히 성리학에 이르러 극대화 되었는데, 성리학을 국가의 통치이념으로 받아들인 조선시대에도 이러한 기풍은 계속 유지 되었다.
이에 반하여 한국의 실학자들은 이용후생의 문제를 중시하여 그것을 체계화 시켰다. 실학자들은 정덕과 이용후생은 서로 분리할 수 없는 동일한 문제의 내외적인 관계에 불과하다고 보아 동일한 중요성을 인정하거나, 아니면 오히려 현실적으로는 이용후생이 정덕보다 먼저 고려되어야 할 제1차적인 문제라고 하면서 이용후생을 전면에 내세웠던 것이다.
특히 박지원(朴趾源)을 위시한 북학파는 "정덕 후에 이용후생이 있다":는 종래의 논리를 비판하고, "이용이 있은 후에 후생이 가능하고 후생이 있은 연후에 정덕이 가능하다"라고 하는 새로운 논리를 제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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