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탕도화 - 赴湯蹈火 ]

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 부탕도화 - 赴湯蹈火 ]

고사성어

by 우암 2023. 6. 18. 06:02

본문

( 나아갈 부 / 끓을 탕 / 밟을 도 / 불 화 )

어려움이나 위험을 가리지 않는 자세를 비유하는 말로,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어든다는 뜻이다.

부탕은 부글부글 끓는 뜨거운 물속으로 뛰어들어간다는 뜻이고, 도화는 활활 타오르는 열화 속으로 뛰어들어간다는 말이다.

< 출 전 > 한서. 조조전

 전한 초기 영천 사람으로 조조라는 학자가 있었다. 그는 한문제 때 태상장고(太常掌故)의 벼슬에 있으면서 복승의 구술에 따라 잃어버린 "상서"를 기록. 정리한 일이 있으며, 나중에는 태자의 가령(家令)으로 있었다.

 당시 사람들은 조조를 가리켜 뱃속에 학문이 꽉 들어찬 사람이라고 칭찬하면서 지낭(智囊)이라고 하였는데, 태자 유계철(劉啓哲)이 한경제(漢敬帝)로 즉위한 뒤 그의 신망은 더욱 높아졌다.

 

  그래서 그는 벼슬이 어사대부에 올라 백관의 위에 놓이게 되었으며 한경제는 조조의 의견이라고 하면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없었다.

  얼마 뒤, 각지에 분봉되어 왕이 된 유씨 자제들, 예컨대 오왕(吳王) 유비(劉鼻), 초왕(楚王) 유무(劉戊), 교서왕(膠西王) 유앙(劉仰)) 등이 점차 조정에 불복하고 각기 독립 왕국을 형성했다. 이에 조조는 한경제에게 그들의 영지를 삭감하고 중앙 집권을 강화함으로써 반란을 방지할 것을 제안한 적이 있는데 이로 인해서 오.초 등 나라들에서는 조조에게 원한을 품게 되었다.

 

  이때 조조의 부친은 그 소식을 듣고 고향인 영천에서 급히 상경하여 "황제와 각지의 왕들은 친골육(親骨肉)인데 네가 그들의 일을 상관할 수 있단 말이냐?"하고 조조에게 물었다.

  조조는 "그러하지만 제가 만약 수수방관(袖手傍觀)하고 있으면 유씨 천하는 망하고 맙니다."라고 대답했다.

 

  이에 분개한 조조의 부친은 "너는 유씨만 알고 우리 조씨 가문은 돌보지 않는구나!"하고 한마디 내뱉더니 즉시 집에 돌아가 독약을 마시고 자살했다. 그 후 오. 초 등 일곱 개 나라에서 반기를 들고일어나자, 아니나 다를까 한경제는 위험한 구면을 완하 시키기 위해서 조조를 살해하고 말았다.

 "싸움에서 이기거나 진지를 고수해서 물러서지 않는 자는 마땅히 승진시켜야 하며 적들의 성이나 진지를 쳐서 빼앗는 자는 응당 장려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장병들이 쏟아지는 화살과 돌벼락을 무릅쓰고 싸울 수 있으며 뜨거운 물 속이나 열화 속에라도 뛰어듭니다."

 

  이와 같이 부탕도화는 부탕화(赴湯火)가 변해서 이루어진 성어인데 후한 때의 학자 환담의 "신론(新論). 변악(辯樂)"에서는 부탕도화로 쓰이고 있다.

 즉, "초나라와 월나라의 풍속은 용맹을 좋아해서 부탕도화의 노래가 있다. ( 楚越之俗好猛  則有楚湯蹈火之歌 )"는 구절이 그것이다.

 

 

 

 

 

반응형

'고사성어'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부화뇌동 - 附和雷同 ]  (0) 2023.06.20
[ 부형청죄 - 負荊請罪 ]  (2) 2023.06.19
[ 부지육미 - 不知肉味 ]  (0) 2023.06.17
[ 부중치원 - 負重致遠 ]  (1) 2023.06.16
[ 부중지어 - 釜中之魚 ]  (1) 2023.06.15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