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사일생 - 萬死一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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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사일생 - 萬死一生 ]

고사성어

by 우암 2022. 10. 22.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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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만 만 / 죽을 사 / 한 일 / 날 생 )

" 만 번의 죽을 고비에서 한 번 살아나다"라는 뜻으로, 수많은 난관을 극복하고 겨우 죽음을 모면한다는 말이다.

<유사어> 구사일생 (九死一生)

< 출 전 >  정관정요 (貞觀政要)

 수(隨) 나라는 양제(煬帝) 때에 이르러 고구려 정벌과 무리한 토목공사, 폭정으로 민생이 피폐해지자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이연(李淵)은 관중의 치안을 맡고 있다가 민란을 진압하라는 명령을 받들어 둘째 아들 이세민(李世民)과 함께 산서, 하동 등 곳곳에서 민란을 진압했다.

 

 양제는 이연의 인상이 범상치 않을 뿐만 아니라, 당시 유행하던 도참설에 '심수몰황양(深水沒黃楊)'이란 예언이 있었으므로 이연을 경계했다. 심수는 깊은 물로 이연의 이름자 연(淵)을 뜻하고, 양(楊)은 수나라 황제의 성이므로, '깊은 연못이 버드나무를 잠기게 하다.' 즉 이연이 수나라를 멸망시킨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런데 이연이 태원(太原) 유수로 있을 때 수나라의 혼란을 틈타 돌궐 족이 국경 지대를 침입했는데, 이연은 이들과 싸우다 병력을 많이 잃고 말았다. 양제는 이연을 강도(江都)로 연행해 오라는 명령을 내렸다. 강도에서는 엄한 형벌이 그를 기다리고 있음이 분명할 터, 이연은 이세민의 설득에 힘입어 반란을 일으키고 수도 장안으로 진격했다.

 

 장안 입성에 성공한 이연은 백성들을 진무하는 한편, 대왕 양유(楊侑)를 황제로 옹립하고, 강도로 피신해 있는 양제를 태상황으로 받들었다. 당국공이었던 이연은 당왕(唐王)이 되어 황제를 대신하여 정무를 폈다. 이 모든 것이 선양을 위한 준비 과정이었다.

 

 한편, 의기가 완전히 꺾인 양제는 마치 모든 것을 포기한 것처럼 강도의 이궁에서 미녀들에게 둘러싸여 유흥에 젖어 살다가, 불만이 쌓여 쿠데타를 일으킨 친위군에 의해 죽고 말았다. 양제가 강도에서 시해되었다는 소식이 장안에 전해지자 이연은 그해 5월, 선양의 형식을 빌려 장안에서 황제의 위에 오르고 나라 이름을 당(唐)이라 했다.

 

 이 과정에서 이세민은 뛰어난 활약을 보였으며, 아버지로부터 "천하는 모두 네가 이룩하여 놓은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이세민이 아버지를 도와 천하를 통일할 수 있었던 것은 그와 생사를 같이한 많은 인재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후 이세민은 궁전의 북문인 현무문(玄武門)에서 형제들을 살해하고 이연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되었는데, 이이가 태종(太宗)이다. 

 

이연은 퇴위하여 태상왕이 되었다. 태종은 그 후 지방에 할거하던 군웅을 복속시키고, 학문을 장려하여 민심을 가라앉혔다. 그는 또 능연각(凌煙閣)을 지어 개국 때부터의 공신 20명의 초상화를 그려 걸어 놓게 했다.

 

 <  정관(貞觀) 10년, 태종이 시신(侍臣)에게 말했다. " 제왕의 업에 창업과 수성 중에서 어떤 것이 어렵소?"  상서좌복야 방현령이 대답했다. "천지가 혼돈스러울 때 여러 영웅이 다투어 일어나, 공격하여 깨뜨려야 항복하며 전쟁에서 이겨야 극복할 수 있습니다. 이로써 말하자면 창업이 어렵습니다." 

 - - - - - 태종이 말했다. "옛날 방현령은 나를 따라 나라를 평정하느라고 고생했는데, 만 번의 죽을 고비에서 살아나오기도 했소.( 出萬死而遇一生 ) 그래서 창업의 어려움을 보았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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