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晉) 나라 때 고개지( 顧愷之 346~ 407 )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재간이 비상하고 그림을 잘 그리는 외에도 우스갯소리를 좋아했다. 그래서 당시의 고관대작들인 환현(桓玄). 은중감(殷仲鑒) 등과 가깝게 사귀면서 우스갯소리를 곧잘 주고받았다.
어느 날 은중감 집에서 셋이 모여 서로 우스갯말을 하던 끝에 무엇이 이 세상에서 가장 위태로운가에 대해 시를 읊듯이 하면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환현이 먼저 말을 꺼냈다.
" 창끝이나 칼날이 부서진 파편으로 밥을 지어 먹는 것이지 (矛頭淅米劍頭炊) "
이어 은중감도 예 한 가지를 들었다.
" 백 살 먹은 노인이 마른 나뭇가지에 오른 것이 아니겠나 ( 百歲老翁攀枯枝) "
마지막에 고개지가 입을 열었다.
" 우물의 도르래 위에 어린애가 누워 있는 것이지요 ( 井上轆轤臥嬰兒 ) "
그때 참군(參軍)이라는 낮은 벼슬에 있던 사람이 곁에서 듣고 있다가 가소롭다는 듯이 한마디 내뱉었다.
" 소인이 생각하기에는 소경이 눈먼 말을 타고 야밤중 깊은 못가에 이르는 것( 盲人騎瞎馬 夜半臨深池)이 아닐까 합니다."
듣고 보니 위태로운 상황을 묘사하는 표현으로서는 나무랄 데 없는 문구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은중감은 한쪽 눈이 먼 사람이었는데, 그런 사람 앞에서 소경이 어떻다고 하는 것은 실로 불경(不敬)스런 언행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아랫사람으로서 고관대작들 앞에서 함부로 입을 놀린 것도 불경스러운 짓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화를 낼 수도 없고 하여 그날의 유희는 그저 이렇게 멋쩍게 끝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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