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문난적 - 斯文亂賊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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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문난적 - 斯文亂賊 ]

고사성어

by 우암 2023. 8. 26.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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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사 / 글월 문 / 어지러울 난 / 도둑 적 )

  "유교(儒敎)를 어지럽히는 도적'이라는 뜻으로, 교리에 어긋나는 언동으로 유교를 어지럽히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 출 전 > 논어

  조선 후기의 학자 박세당(朴世堂)이  <대학>, <중용>, <논어>, <맹자>, <상서>, <시경>을 주해한 <사변록 思辨錄>이란 책이 있는데, 이 중에서 가장 주력한 것은 사서(四書)에 관한 주석이다.  특히, <대학>과 <중용>에 더욱 역점을 두었다. 

그는 당시 사서의 주석으로 종래의 권위를 가지고 정통으로 여겼던 종래의 권위를 가지고 정통으로 여겼던 주자의 설을 통해 해석을 가한 것이 많다.

 

  이렇듯 주자의 경의(經義)에 반기를 들고 자기 식의 해석을 했기 때문에 당시 정계, 학계에 큰 물의를 일으켜 "사문난적(斯文亂賊)" 이란 말은 원래 유교 반대자를 비난하는 말이었으나, 조선 중엽 이후 당쟁이 격렬해지면서부터 그 뜻이 매우 배타적이 되어 유교의 교리 자체를 반대하지 않더라도 그 교리의 해석을 주자(朱子)의 방법에 따르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사문난적"으로 몰았다.

당시 중국에서 성행하던 육상산(陸象山), 왕양명(王陽明)의 심학(心學) 같은 것도 조선시대에는 용납되지 않았으며 주자가 경전을 해석한 것은 절대적인 권위를 지녔다.

 

  숙종(肅宗) 때의 대학자인 윤휴가  유교 경전(經典)을 주자의 해석에 의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해석했다 하여 송시열에 의해  사문난적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송시열은 "주자가 모든 학문의 이치를 이미 밝혀놓았는데, 윤휴가 감히 자기 의견을 내세워 억지를 부리니 진실로 사문난적이다"라고 평했다.

  당시 윤휴는 북벌론을 주장하며 개혁적인 성향의 남인이었는데, 서인과 정치싸움에서 패배하여 유배지에서 사사되었다.

 

  <논어>에 있는 이야기다. 공자가 광(匡) 지방에서 위태로운 처지에 빠졌을 때 말했다.

  "문왕은 이미 세상을 떠나셨지만 그가 남긴 문화는 나에게 있지 않은가. 하늘이 장차 이 문화(斯文)를 없애신다면 후세 사람들이 이 문화를 향유하지 못할 것이다. 하늘이 장차 이 문화를 없애려 하지 않는다면 광 지방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하겠느냐?"

 

  이처럼 사문(斯文)에는 '이 문화"라는 의미가 달려 있다. 공자가 말한 문화란 유가(儒家)의 이념 아래 계승된 경험의 총화를 가리킨 것이다. 따라서 사문 하면 곧 유가 자체를 일컫는 말이 된다. 그런 문화를 어지럽히고 해친다는 말은 곧 유가에 대한 도전을 뜻하며, 유가의 이념을 수용하지 않으려는 모든 세력이 여기에 해당된다.  그러므로 '사문난적"이라 하면 이단이란 말과 일치한다.

  그런데 "사문난적"은 꼭 이단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고 같은 유가 내에서도 통용된다. 공자의 적통을 이어받지 않은 유가 학설을 주장하는 것도 곧 이단과 동일한 취급을 했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유가 사상사와 맞물려 대단히 복잡하게 전개된 상황이기 때문에 여기서 길게 논의할 수는 없지만, 한 가지 예를 들어 대신하기로 한다.

 

  조선 중기 때 학자인 윤휴(1617~1680)는 경학자로서 유가 경전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논어>를 읽다가 이상한 구절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는 < 논어>를 읽다가 이상한 구절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은 향당편에 나오는 한 구절이었다.

  마구간에 불이 낫다.  공자께서 조정에서 돌아오셔서 묻기를 "사람이 다쳤느냐?' 하시고 말에 대해서는 묻지 않으셨다.

     廐焚  子退朝  曰傷人乎  不問馬  ( 구분 자퇴조  왈상인호  불문마 )

 

  이를 정통 유학자들은 공자의 인본주의(人本主義) 정신이 드러난 구절이라고 해석하였다.  그러나 윤휴의 입장에서 생각할 때 사랑방도 아닌 마구간에 불이 났는데 말의 안위에 대해서 묻지 않았다는 것을 인(仁)을 주장한 공자로서 지닐 태도가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말도 하나의 생명체인데 어찌 말에 대해서 그렇게 냉담할 수 있을 것인가?  그 결과 윤휴는 원문의 구두가 잘못되었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마구간에 불이 났다. 공자께서 조정에서 돌아오셔서 묻기를 "사람이 다쳤느냐, 아니냐?" 하시고 다음에 말에 대해서 물으셨다.

     廐焚  子退朝  曰傷人乎不  問馬   ( 구분  자퇴조  왈상 인호불  문마 )

 

  이렇게 한 글자를 달리 끊어 읽자 인명을 중시하면서 동시에 인의정신이 미물인 말에까지 미친 공자의 덕성이 요연하게 드러났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경전을 신성시해서 함부로 변경하지 않았던 고루한 유학자들로부터 큰 물의를 일으켜 한때 그는 사문난적이라는 비난을 듣게 되었던 것이다.

 

  뒷날 윤휴는 사사(賜死)되었는데, 꼭 이 일 때문은 아니었지만 유학의 정통에 도전하는 일을 얼마나 큰 죄악으로 여겼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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