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한의 11대 황제인 애제(哀帝) 때의 일이다. 그는 할머니 부씨(傅氏)와 어머니 정씨(丁氏) 일가에서 정치를 맡긴 뒤 동현(董賢)이라는 22세의 젊은 청년에게 빠져 그를 군사와 정치의 대권을 장악한 대사마(大司馬)에 임명하는 등 방종하기 짝이 없던 군주였다.
그때 황후의 아버지와 동향 사람인 식부궁이 흉노족이 침입한다고 하면서 군대를 변경 지역으로 집결시켜야 한다는 상소문을 올렸다. 애제는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승상인 왕가(王嘉)에게 물었다. 왕가가 간곡하게 제지하며 말했다.
"폐하. 그 따위 헛소문에 속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옛날 진목공(秦穆公)이 중신들의 건의를 무시한 채 정(鄭) 나라에 원정병을 보냈다가 크게 낭패한 일이 있었지 않습니까? 그러나 목공은 곧 잘못을 고쳐 크게 이름을 남겼습니다. 폐하께서 먼저들은 말(先入主)을 위주로 중시하는 순서를 정하신다면 장차 크게 위험에 처하시게 될 것입니다."
애제는 왕가의 말을 듣지 않았지만, 나중에 식부궁의 말이 거짓이라는 것이 탄로가 나 식부궁은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