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겨움을 따라왔다가, 흥이 다하여 돌아간다"는 뜻으로, 외물(外物)에 마음이 속박되지 않는 참된 쾌락을 이르는 말이다.
< 출 전 > 초학기(初學記)
<초학기> 유서(類書)로서 당나라의 서견(徐堅) 등이 편찬했다.
동진(東晋)의 왕휘지(王徽之)는 유명한 서예가 왕희지(王羲之)의 아들이다. 아버지가 서성(書聖)으로 추앙받는 만큼 그도 명문의 후광을 업고 있는 신분이건만, 크게 출세하고 싶은 욕망이 없어 자연을 벗 삼아 유유자적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어쩌다 관청에 떼밀려 들어가 역인(役人) 노릇을 하게 되었는데, 직무는 뒷전이고 말을 타고 산야를 주유하는 것이 일상사였다.
한 번은 그날도 말에 올라타고 경치를 구경하러 나갔다가 잠시 말에서 내려 쉬기로 했다. 말도 지루한지 무릎을 꿇고 풀밭에 엎드렸고, 그 역시 비스듬히 드러누워 맑은 하늘을 쳐다보며 시구를 흥얼거렸다. 바로 그때, 이웃 고을의 제법 높은 관리가 지나가다가 그 꼴을 보고 물었다.
" 차림새를 보아하니 고을 관원인 듯한데, 직무가 뭔가? "
그러자 왕휘지는 시치미를 뚝 떼고 대답했다.
" 예, 저는 관마(官馬)에게 바깥구경을 시켜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마침내 왕휘지는 깊은 산속 강가에 집을 지어 세상을 등지고 숨어버렸다. 그리고는 자연과 짐승들을 벗 삼아 신선처럼 살았다.
그러던 어느 겨울밤이었다. 온 산이 눈에 덮여 은세계를 이룬 가운데 보름달이 떠서 푸른 달빛 휘장을 드리우니 그 정취가 그만이었다. 왕휘지는 그 황홀한 설경에 취해 혼자 술을 마시고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그러다 문득 친구인 대규(戴逵)가 생각났다. 대규는 거문고의 명수에다 왕휘지처럼 출세에는 무관심한 한량이어서 두 사람은 누구보다 서로 죽이 맞는 친구였다. 왕휘지는 하인에게 말했다.
" 어서 배를 준비해라! " 눈이 휘둥그러진 하인이 물었다.
" 아니, 이 밤에 어딜 가시려고요?"
" 대군네 집으로 빨리 가자 ! "
왕휘지는 친구가 기다리기도 하는 듯 서둘렀다. 곧 배는 강기슭을 벗어나 물결 따라 내려가기 시작했고, 왕휘지는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함께 즐거워할 일을 상상하느라 마음이 한껏 부풀었다.
" 흠, 날 어지간히 반가워하겠지. 눈밭에 책상을 내놓고 밝은 달빛 아래서 거문고 타고 퉁소 불고 시를 짓는다면 - - - - - 아아 , 그야말로 신선의 풍류가 아니겠는가! "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차츰 감흥이 식기 시작해서, 이윽고 대규의 집이 저만치 바라보였을 때는 완전히 딴 기분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하인더러 즉시 배를 돌리게 했다.
오랜 뒤에 왕휘지로부터 이야기를 들은 대규는 어이가 없었다.
" 이 사람아, 근처까지 왔다 그냔 돌아가는 법이 어디 있나 ? "
그러자 왕휘지는 껄껄 웃으며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 아, "흥이 나서 자네를 만나러 왔는데, 그 흥이 죄 깨져 버린 ( 乘興而來 興盡而反 )" 다음에 만나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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