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전이하 - 瓜田李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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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전이하 - 瓜田李下 ]

고사성어

by 우암 2022. 2. 19.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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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이 과 / 밭 전 / 오얏나무 이 / 아래 하 ) 

"오이밭에서 신을 고쳐 신지 말고, 오얏나무 아래에서는 갓을 고쳐 쓰지 말라"는 뜻으로, 의심받을 만한 행동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유사어>  과전불납리 ( 過田不納履 )

< 출 전 >  문선(文選)  고악부(古樂府)편  군자행(君子行)  /  열녀전(列女傳) 절의(節義) 편

 악부는 시체(詩體)의 한 가지로, 원래는 한나라 때 있던, 음악을 보존하고 연주하는 관청의 이름이었는데, 나중에는 악부에서 취급하는 노래를 가리켜 말하게 되었고, 다시 나아가서 관청과는 상관없이 음악에 실려 불리는 가사를 그렇게 부르게 되었고, 혹은 원래 있던 제목을 빌어 새로운 가사를 짓기도 하고, 음악과는 직접 관계없는 시로써 창작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제작 방법과 내용과 분위기에 어딘가 가곡적인 경향을 지니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고사(古辭)란, 작자가 알려져 있지 않은 민간의 가곡을 말하는데, 여기에 나오는 '군자행'은 군자가 세상을 살아가는 태도를 말한 노래다.

 

 군자는 미연을 막아

 혐의 사이에 처하지 않는다.

 오이밭에서 신을 고쳐 신지 않고

 오얏나무 밑에서 갓을 바로 잡지 않는다.

 형수와 시아주버니는 손수 주고받지 않고

 어른과 아이는 어깨를 나란히 하지 않는다.

 공로에 겸손하여 그 바탕을 얻고

 한데 어울리기는 심히 홀로 어렵다.

 주공은 천한 집 사람에게도 몸을 낮추고

 입에 든 것을 토해 내며 제대로 밥을 먹지 못했다.

 한 번 머리 감을 때 세 번 머리를 감아쥐어

 뒷 세상이 성현이라 일컬었다.

 

君子防未然    不處嫌疑間       군자방미연     불처혐의간

瓜田不納履    李下不整冠       과전불납리     이하부정관

嫂叔不親援    長幼不比肩       수숙불친원     장유불비견

努謙得其柄    和光甚獨難       노겸득기병     화광심독난

周公下白屋    吐哺不及餐       주공하백옥     토포불급찬

一沐三握髮    後世稱聖賢       일목삼악발     후세칭성현

 

시의 앞부분 반은 남의 혐의를 받을 만한 일을 하지 말라는 것을 말했고, 뒤의 반은 공로를 자랑하지 말고 세상 사람들을 겸허하게 대하라는 것을 말하고 있어 시의 내용이 통일되어 있지 않다. 시의 내용을 순서에 따라 설명하면,

 

 군자는 사건이 생기기 전에 미리 막아야 한다. 남이 의심할만한 그런 상태에 몸을 두어서는 안 된다.  참외밭 가에서 신을 고쳐 신는 것은 참외를 따러 들어가려는 것으로 오인을 받기 쉽다.

 또 오얏나무 밑에서 손을 올려 갓을 바로 쓰거나 하면 멀리서 보면 흡사 오얏을 따는 것으로 보이기 쉽다. 형수 제수와 시숙 사이에는 물건을 직접 주고받고 하는 일이 없어야 하고, 어른과 손아래 사람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가면 예의를 모른다는 평을 듣게 된다.

 

 자기의 수고를 내세우지 말고, 항상 겸손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 군자의 본바탕을 지키는 일이며, 가장 어려운 일은 자기의 지혜나 지식을 자랑하지 말고, 세속과 함께 하여 표 없이 지나는 일이다.

 옛날 주공(周公)은 재상의 몸으로 아무 꾸밈이 없고 보잘것없는 집에 사는 천한 사람에게도 몸을 낮추었고, 밥을 먹을 때 손님이 찾아오면 입에 넣었던 밥을 얼른 뱉고 나아가 맞았으며, 머리를 감을 때 손님이 찾아와서 세 번이나 미처 머리를 다 감지 못하고 머리를 손으로 감아 쥔 채 손님을 맞은 일이 있었다. 그러기에 후세 사람들은 주공을 특히 성현으로 높이 우러러보게 된 것이다.라는 뜻이 된다.

 

  옛날 천자문을 다 떼고, 처음 시를 배울 때 읽는 책으로, <천고당음(天高唐音)>이란 것이 있었다. 첫머리에 '하늘이 높으니 해와 달이 밝고(天高日月明), 땅이 두터우니 풀과 나무가 난다(地厚草木生)'는 글귀가 나오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또 <당서(唐書)> 유공권전(柳公權傳)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당나라 문종황제가 곽민이라는 사람을 빈영지방의 지방장관에 임명했다. 당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것은 곽민이 딸 둘을 대궐에 들여보냈기 때문이라고 수군댔다. 이에 황제는 유공권에게,

 '곽민의 두 딸을 태후를 뵙기 위해서 입궐한 것이지, 짐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노라'라고 말했다. 그러자 유공권은,

 '참외밭이나 오얏나무 밑에서의 혐의를 어찌 집집마다 다 알릴 수 있겠습니까 (瓜李之嫌  何以戶曉)?'라고 대답했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열녀전(列女傳)에도 전한다.

 전국시대 제위왕(齊威王)에게는 우희(虞姬)라는 후궁이 있었다. 위왕에게는 파호(破胡)라는 간신이 있어 왕의 눈을 속이고 온갖 부정을 다 저지르고 있었다. 보다 못한 우희가 위왕에게 그의 좌상을 낱낱이 폭로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파호는 9층 누각에 그녀를 감금하고는 위왕에게 말도 안 되는 중상모략을 하였다. 화가 난 위왕은 사실을 확인하려고 그녀를 불렸다. 위왕 앞에 선 우희는 이렇게 말했다.

 

 ' 이것은 모두 간신배가 지어낸 모함입니다. 제게 잘못이 있다면 오이밭에서는 신을 고쳐 신지 말고 오얏나무 아래에서는 관을 바로잡지 말라는 옛 격언을 피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녀의 말을 들은 위왕은 깨달은 바가 있어 곧 간신 파호를 내쫓고 흐트러진 조정의 기강을 바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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