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안룡 - 獨眼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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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안룡 - 獨眼龍 ]

고사성어

by 우암 2022. 8. 27.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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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홀로 독 / 눈 안 / 용 룡 )

" 외눈박이 용"이란 뜻으로, 남달리 출중하고 용감한 젊은 사람을 비유할 때 쓰인다.

 이극용을 가리켜 한 말이다.

< 출 전 > 당서(唐書)  이극용전(李克用傳)

 당나라 의종(懿宗) 말년(873) 산동. 하남 지방은 대홍수를 만났으나 이듬해인 희종(僖宗)의 건부(乾符) 원년에는  같은 이 지방이 전년과는 딴판으로 큰 가뭄을 당하는 불행을 만났다.  그런데 주현(州縣)의 세금 징수는 가혹하기 짝이 없어 농민들은 부득이 그 아내를 팔고 자식을 팔아 겨우 가세(苛稅)를 감당하고 있었다. "가렴주구(苛斂誅求)"가 극심했다. 그러나 그것도 한도가 있었다.

 

 산동의 일각에서 불타오른 농민 봉기의 불길은 드디어 조주(曹州) 출신인 일대의 풍운아 황소(黃巢)를 궐기시켰다. 황소는 그보다 일찍 이미 난을 일으키고 있었다.  같은 산동의 왕선지(王仙之)와 손을 잡고 각지를 전략(轉掠)할 때마다 찾아와 투항하는 자들을 합쳐 급속히 그 병력을 증강시켜 갔다.

 

 얼마 안 되어 병력 수십만을 헤아리게 된 황소는 광명(廣明) 원년 11월, 낙양을 무찌르고 노도와 같이 진격을 계속, 드디어 당의 수도 장안을 제제(齊帝)라 칭하고서 대제국(大齊國)을 세웠다.

 

 그러나 한편 흥원(興元)에서 성도로 난을 피해 있던 희종(僖宗) 측에서도 착착 반격 태세를 굳히고 있었다. 즉 당군(唐軍)의 맹장 이극용(李克用)의 등장이다. 이극용은 6세기경부터 중국 북부 몽고고원으로부터 알타이 지방을 지배했던 돌궐(突厥)의 일파인 사타족(沙陀族) 출신이었다.

 

 할아버지 때부터 당나라에 들어와 아버지가 방훈(龐勛)의 난에서 공을 세워 이국창(李國昌)이라는 이름을 하사 받아 이후 성씨를 이 씨로 하였다.

 

 황소의 난은 일개 소금 밀매업자가 주동이 된 폭동이었지만, 순식간에 폭정과 극빈에 시달리던 농민들의 지지를 얻어 전후 10년간에 걸쳐 천하를 뒤흔들어 놓았다. 당시 세계 최고의 문화를 자랑하던 당나라도 이 반란의 여파에 휩쓸려 결국 망하고 말았던 것이다. 누구도 섣불리 황소의 반군을 공격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유독 이극용이 이끄는 달단족의 기마부대만 용감하게 그들과 맞붙어 전과를 올렸다. 황소의 반군들은 이들을 아아군( 鴉兒軍 : 까마귀 부대 )이라 하며 싸우지도 않고 달아났다고 한다. <자치통감>에는 이극용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 이극용이 나이 28세로 여러 장군들 중에서 가장 나이가 어렸다. 그러나 황소를 격파하고 장안성을 회복하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웠다.  때문에 당시 장군들은 모두 그를 두려워하였다.  이극용은 한쪽 눈이 아주 작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외눈박이 용이라고 불렀다. ( 克用時年二十八  於諸將最少  而破黃少  復長安功第一  兵勢最彊諸將皆畏之  克用一目微眇  時人謂之獨眼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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