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산재기 - 東山再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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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산재기 - 東山再起 ]

고사성어

by 우암 2022. 9. 10.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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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녘 동 / 뫼 산 / 다시 재 / 일어날 기 )

" 동산에서 다시 일어난다"는 뜻으로, 은퇴한 사람이나 실패한 사람이 재기하여 다시 세상에 나오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 출 전 > 진서(晉書)  사안전(謝安傳)

 동진(東晉) 때  진무제의 대신 사안(謝安)은 선비로서 수양과 기품이 있어 젊어서부터 명성이 높았다.  오랫동안 회계(會稽)에서 은둔생활을 하면서 왕희지(王羲之)와 허순(許詢), 지둔(支遁) 등과 교류하면서 자연이 풍류를 즐겼다. 양주자사(揚州刺史) 유영(庾永)이 그의 평판을 듣고 몇 번이고 출사를 청하자 마지못해 한 달 남짓 관직에 이었지만 곧 사임하고 돌아와 버렸다.

 

 주위 사람들이 서운하게 여기자 사안은, "지금의 상황으로는 관직에 그대로 머무는 것이 신상에 해로울 것 같다"라고 하면서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국내에서는 문벌 세력이 서로 다투고 북쪽에서는 전진(前秦)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나이 40세 되던 해, 문벌 세력을 제압한 정서대장군(征西大將軍) 환온(桓溫)이 청하자, 마침내 그의 휘하에 들어가 이부상서(吏部尙書)의 요직에까지 진급하게 되었다.  그러나 환원이 제위를 넘보려 하자 이를 저지하고, 그 공으로 효무제(孝武帝)가 즉위한 후에는 재상이 되었다.

 

 태원(太元) 8년  전진(前秦) 왕 부견(苻堅)이 백만 대군을 이끌고 남하하여 비수(淝水)에 주둔했는데, 위세로 강동 일대가 진동했다. 정토대도독이 되어 동생 사석(謝石), 조카 사현(謝玄)과 함께 이들을 강력하게 방어하여 대승을 거두어 건창현공(建昌縣公)에 봉해졌다.  이어 사석 등에게 북정(北征)을 지시해 낙양과 청주, 연주 등을 수복하고, 양주와 강주, 형주 등 15주(州)의 군사(軍事)를 맡았다.

 

 당시 회계왕(會稽王) 사마도자(司馬道子)가 정권을 잡고 있었는데, 배척을 당해 외직으로 나가 광릉을 지키다 얼마 뒤 병사했다.

 

 "동산재기"는 이와 같이 사안이 동산에 은거하다가 관계에 나가 크게 성공한 것을 가리키던 말로, 오늘날에는 한번 실패했던 사람이 재기에 성공한 경우까지 이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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