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호지필 - 董狐之筆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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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호지필 - 董狐之筆 ]

고사성어

by 우암 2022. 9. 17.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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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로 잡을 동 / 여우 호 / 갈 지 / 붓 필 )

 " 동호의 붓" 이라는 뜻으로, 권세에 아부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원칙에 따라 사실을 바르게 기록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 출 전 >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선공(宣公)

 춘추시대 진(晉) 문공이 세상을 떠나고 양공이 즉위한 뒤 조돈(趙盾)이 재상으로 있으면서 많은 치적을 쌓았다. 당시 사람들은 조돈과 그의 아버지 조최를 진나라의 공신으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두 부자의 성격은 판이하게 달랐다. 어떤 사람이 대부 호역고(狐射姑)에게 "조최와 조돈은 어떤 사람인가?" 하고 물었다.

 

 호역고는, "조최는 겨울날의 해와 같고, 조돈은 여름날의 해와 같다 (趙衰  冬日之日也  趙돈  夏日之日也 )"라고 대답했다.

 

 여기서 하일(夏日)과 같은 뜻으로 추상(秋霜)이란 말도 많이 쓰이는데, 모두가 정직하고 인격이 높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써 "하일추상(夏日秋霜)"이라고도 한다.

 

 양공이 죽은 뒤 어린 나이로 즉위한 진영공은 아주 어리석고 포악한 임금이었다. 예컨대 그는 높은 정자 위에서 지나가는 행인을 활로 쏘아 맞히는 놀이를 도락으로 삼았고, 요리사가 국을 맛이 없게 조리했다고 해서 죽여버리기까지 하는 위인이었다. 이에 재상 조돈이 여러 차례 간언 했지만 왕은 듣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세 번이나 조돈을 죽이려다가 실패하였다. 결국 신변의 위협을 느낀 조돈은 외지로 나가 잠시 피신을 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조돈의 사촌형인 조천(趙穿)이 진영공이 도원에서 술에 만취한 틈을 타서 심복을 시켜 감쪽같이 시해하고 말았다. 이에 조돈은 즉시 도성으로 돌아와 진성공을 세우고 계속 재상 직을 맡아보게 되었다. 그 후 사관인 동호가 이 사실을 역사에 기록할 때 "조돈이 임금을 시해하였다."라고 써넣었다. 그 기록을 본 조돈은 깜짝 놀라 급히 동호를 찾아가 일이 그렇게 된 연유를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그러자 동호가 질책하는 어조로 조돈을 꾸짖었다.

 

  " 대인께서는 일개 재상의 몸으로 당시 달아나기는 했지만 국경을 넘어가지 않았으며, 또 돌아와서도 죄인들을 징벌하지 않았으니, 이 죄를 대인께서 지지 않으면 누가 책임져야 하겠습니까?"

 

 <춘추좌씨전> 선공 2년조에서는 이 사실을 서술하면서 "동호는 옛날 훌륭한 사관으로 사건의 진실을 왜곡하지 않았다"고 평한 공자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동시에 공자는 조돈에 대해서도 "옛날 훌륭한 대부였던 조돈은 억울하게 죄명을 뒤집어쓰게 되었는데 안타까운 일이다. 만일 그가 본국을 떠났더라면 아무 책임도 없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나중에 공정한 사관을 칭송할 때면 동호라고 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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