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한(後漢)의 제4대 황제 화제(和帝)는 장제(章帝)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이름은 유조(劉肇)이다. 어머니인 양귀인(梁貴人)은 장제의 황후 두씨(竇氏)에게 살해당했다. 이복형 유경(劉慶)을 대신하여 태자가 되었고 88년 9살 때 즉위하였다.
정식 시호는 효화황제(孝和皇帝)이다. 나이가 어려 두태후(竇太后)가 수렴청정을 하여 태후(太后)의 오빠인 두헌(竇憲)이 외척으로 정권을 장악하였다.
조정의 높은 자리는 두태후(竇太后)의 친정 식구들이 몽땅 차지하고 정치를 독점해버린 바람에 다른 대신들은 모두 꼭두각시요, 꿀 먹은 벙어리에 불과했다. 효문황후(孝文皇后) 두씨는 전한 문제의 황후이며 전한 경제의 어머니이다. 누구 하나 그 폐해를 모를리 없지만, 혀를 잘못 놀렸다가는 언제 목이 달아날지 몰라 다들 입을 봉하고 있었다.
이때, 조정의 돌아가는 형편을 보다 못해 분연히 떨치고 일어선 사람이 있었다. 임금에게 직언하는 대관(臺官) 정홍(丁鴻)이 바로 그 사람으로서, 유창하고 논리 정연한 언변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었다.
정홍은 황실 외척들이 국정을 농단하는 사태를 더 이상 방치하다가는 나라가 위태로울 것으로 보고, 목숨을 던져서라도 시정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기회를 잡아 주위를 물리친 뒤 황제와 독대하여 단도직입적으로 진언했다.
" 폐하, 그릇된 사물도 처음에 즉각 손을 써서 바로잡으면 용이하게 풀리지만, 뒤로 미루다 보면 점점 손댈 수 없게 되어 마침내 수습 불능의 지경에 이르고 맙니다. 황공하옵게도 지금의 조정의 바로 그런 형편이어서, 폐하의 외척들인 두씨 일족이 국정을 농단하고 갖은 비리를 다 저지르고 있습니다. 이제 폐하께서 과감히 "두점방맹" 하셔서 이를 시정하지 않으시면 장차 큰 후회를 하시게 될 것입니다. 통촉하소서!"
화제가 듣고 보니 정신이 번쩍 드는 소리였다.
" 잘 알겠소. 짐이 어떻게 하면 좋겠소?"
" 두씨 일족을 삭탈관직하여 조정에서 내치시고, 태후마마의 국정 간섭을 막아 폐하께서 친정(親政)을 시작하십시오. 그와 동시에 어질고 유능한 선비들을 발탁하여 각각 빈자리를 메우고 폐하를 보필하게 하시면 황실은 반석처럼 굳건해지고 천하는 안정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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