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인 - 慕藺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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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인 - 慕藺 ]

고사성어

by 우암 2022. 12. 1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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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모할 모 / 골풀 인 )

" 인상여를 사모한다"는 말로, 어질고 유능한 사람을 그리워하며 따른다는 뜻이다.

< 출 전 > 사기(史記). 사마상여(司馬相如) 열전

 인상여(藺相如)는 전국시대 말 조(趙) 혜문왕(惠文王)의 가신으로, "완벽(完壁), 문경지교(刎頸之交)"의 고사에서 영웅으로 알려져 있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에서 인상여는 문무와 지용(知勇)을 모두 갖춘 장수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사마상여(司馬相如)는 전한(前漢)의 문인으로 촉군(蜀郡) 성도(成都) 사람이다. 어릴 때 독서하기를 좋아하였고 검 쓰는 법을 배워 부모는 그를 견자(犬子)라 부르며 귀여워했다 한다. 부(賦)를 잘 지어 무제(武帝)의 사랑을 받았으며, 탁문군(卓文君)과의 연애 사건은 유명한 일화이다

 

 학업을 마친 후 인상여의 사람됨을 흠모하여 이름을 사마상여로 고쳤는데, 여기서 "모인(慕藺)"이라는 말이 비롯되었다. 사마상여가 흠모한 인상여는 전국시대 조(趙) 나라의 상경(上卿)을 지낸 사람이다. 조나라 혜문왕 때, 진(秦)의 소왕(昭王)이 조나라에 화씨벽(和氏璧)이라는 진귀한 옥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이를 열다섯 성과 바꾸자는 제의를 해 왔다.

 

 혜문왕으로서는 이 제의를 받아들일 수도 없고 거절할 수도 없어 고심하였다. 열다섯 성을 둔다는 것은 거짓임이 분명할 테고, 거절하자니 강대한 진의 침략을 받을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혜문왕은 이 일의 처리를 인상여에게 부탁했다. 인상여는 화씨벽을 가지고 진나라에 들어가 담대한 용기와 변설로 소왕을 설득하여 화씨벽을 온전하게 조나라로 가지고 돌아왔다 (完璧歸趙).

 

 이후에도 왕을 수행하여 민지에서 진나라 소왕과 만났을 때 대담하게 진왕을 공박하여 혜문왕이 치욕을 당하지 않게 하였다. 이 일로 인상여는 상경이 되었다. 조나라에는 여러 전쟁에서 나라를 구한 염파(廉頗)라는 장군이 있었는데, 인상여가 상경이 되어 자기보다 지위가 높아지자 분개하여 인상여를 욕보이려 하였다. 인상여는 늘 염파를 피해 다니다가 주위의 불평이 심해지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 내가 위엄으로 진왕을 누른 사람인데, 하물며 염파 장군을 겁내겠느냐. 다만 염파 장군과 내가 다투면 적인 진나라를 이롭게 할 것이 걱정되기 때문이다."

 

 이 말을 전해들은 염파는 회초리를 메고 인상여에게 찾아와 사죄했으며(負荊請罪), 둘은 이후 문경지교(刎頸之交)를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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