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경지교 - 刎頸之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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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경지교 - 刎頸之交 ]

고사성어

by 우암 2023. 1. 22.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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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벨 문 / 목 경 / 갈 지 / 사귈 교 )

" 목을 베어 줄 수 있을  정도로 절친한 사귐"이라는 뜻으로, 생사고락을 함께할 수 있는 친구 사이를 말한다.

<유사어>  관포지교(管鮑之交),  금란지계(金蘭之契)

< 출  전 >  사기(史記)  /  염파인상여열전(廉頗藺相如列傳)

  조(趙)나라 헤문왕(惠文王)이 화씨벽(和氏壁)이란 구슬을 얻게 되자, 진(秦)나라 소왕(昭王)이 그 화씨벽과 진나라 열다섯 성(城)을 서로 교환하자고 제의해 왔다. 진나라의 청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진나라가 구슬을 차지한 뒤에 성을 줄 것 같지가 않았다. 결국 제 것 주고 바보 되는 그런 꼴이 될까 걱정이 되었다.

 

  대신들을 모아 놓고 상의를 해 보았으나 모두 얼굴만 마주 볼 뿐이었다. 이때 환자령(宦者令) 무현(繆賢)이 인상여를 천거했다.

 

  인상여(藺相如)는 화씨벽을 가지고 진나라로 갔으나, 진나라 왕은 구슬만 받아 들고 성을 줄 눈치는 보이지도 않았다. 인상여는 진나라에 속은 것을 알고 교묘한 말과 재치 있는 행동으로 구슬을 도로 받아낸 다음, 진나라 왕과 다시 만나기로 약속한 날이 미처 오기 전에 구슬을 사람을 시켜 조나라로 되돌려 보내는 데 성공했다. 진왕은 인상여를 죽여 보았자 자기에게 욕밖에 돌아올 것이 없는 것을 알고 그를 후히 대접해 돌려보냈다.

 

  인상여가 돌아오자 조왕은 그를 상대부(上大夫)에 임명했다. 벼락출세를 한 것이다. 진나라는 그 뒤 조나라를 여러 차례 친 끝에 사신을 보내 조나라와 화친을 맺고 싶다면서 양국 국경 가까이 있는 면지에서 만나자고 통고를 해 왔다. 조왕은 어떤 불행이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은 생각에 이를 거절하려 했다. 그러나 장군 염파(廉頗)와 인상여는, " 왕께서 가시지 않으면 조나라가 약하다는 것을 보여 주게 됩니다."하고 가기를 권했다.

 

  이리하여 인상여가 조왕을 수행하고 염파가 나라를 지키기로 한 다음 염파는 왕을 국경까지 호송하고 작별에 앞서, " 왕복 한 달이면 돌아오실 수 있습니다. 그때까지 돌아오시지 않을 때는 태자를 왕위에 올려 진나라의 야심을 사전에 막았으면 합니다."

 

  왕은 승낙했다. 모두 최악의 사태를 각오하고 떠나는 길이었다. 면지에서 회견이 끝나고 술자리가 베풀어졌을 때, 진왕은 조왕에게 거문고(瑟)를 한 곡 켜 달라고 청했다. 조왕이 마지못해 한 곡을 마치자, 진나라 어사가 앞으로 나와, "아무 해, 아무 날, 아무 달, 아무 날 진왕이 조왕과 만나 술을 마시며 조왕에게 거문고를 타게 했다"라고 기록했다. 조왕에게 모욕을 주려는 계획된 행동이었다.

 

  그러자 인상여가 앞으로 나아가, "서로 주고받는 것이 예의이니, 이번에는 진왕께서 우리 임금을 위해 진나라 음악을 한번 들려주십시오"하고 부( 缶:질그릇 악기)를 진왕에게로 내밀었다.

 

  진왕은 얼굴에 노기를 띠고 응하지 않았다. 인상여는 다시 부(缶)를 진왕의 코앞에 바짝 들이 밀고 청했다. 진왕은 여전히 부를 칠 뜻이 없었다. 인상여는 말했다.

 

  "지금 대왕과 나 사이에는 불과 다섯 걸음밖에 안 됩니다. 나는 내 목의 피로 대왕의 옷을 물들일까 합니다. 어서 치십시오"

 

  내 손에 죽을 수도 있다는 위협이었다. 진왕을 모시고 있던 사신들이 인상여를 칼로 치려했다. 인상여는 눈을 부릅뜨고 소리쳐 꾸짖었다. 그들은 겁에 질려 옆으로 피했다. 진왕도 기가 꺾여 마지못해 부를 치며 한 곡을 치는 둥 마는 둥 끝냈다.

 

인상여는 조나라 어사(御史)를 불러, "아무 해, 아무 달, 아무 날, 진왕이 조왕을 위해 부를 쳤다."라고 기록하게 했다. 진나라 신하들은 멋쩍은 태도로, "조나라에 열다섯 성을 바치고 진왕의 장수를 베십시오"하고 말했다. 그러자 인상여는 얼른 "진나라 함양(咸陽)을 바치고 조왕의 장수를 베십시오"하고 받아넘겼다.

 

  진왕은 끝내 조나라를 누를 수가 없었다. 무력으로 어떻게 해볼까도 생각했으나, 조나라에서 이미 만일에 대비한 모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을 알자 감히 손을 대지 못했다.

 

  귀국하자 조왕은 인상여가 너무 고맙고 훌륭하게 보여서 그를 상경(上卿)에 임명했다. 그렇게 되자 염파보다 지위가 위가 되었다.  염파는 화가 치밀었다.

 

  "나는 조나라 장군으로서 성을 치고 들에서 싸운 공이 있는 사람이다. 인상여는 한갓 입과 혀를 놀림으로써 나보다 윗자리에 오르다니 이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하고 다시, "상여를 만나면 반드시 모욕을 주고 말겠다"라고 선언했다.

 

  이 소문을 들은 인상여는 될 수 있으면 염파를 자리다툼하는 것을 피했다. 언젠가 인상여가 밖으로 나가다가 멀리 염파가 오는 것을 보자 옆 골목으로 피해 달아나기까지 했다.

 

  이런 광경을 본 인상여의 부하들은 인상여의 태도가 비위에 거슬렸다. 그들은 상의 끝에 인상여를 보고 말했다.

  " 우리들이 이리로 온 것은 대감의 높으신 의기를 사모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염장군이 무서워 피해 숨는다는 것은 못난 사람들도 수치로 아는 일입니다. 저히들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인상여는 그들을 달랬다.

  " 공들은 염장군과 진왕 중 어느 쪽이 더 대단하다고 생각하는가?"

  "그야 진왕과 어떻게 비교가 되겠습니까?"

 

  " 그 진왕의 위력 앞에서도 이 인상여는 그를 만조백관이 보는 앞에서 꾸짖었소. 아무리 내가 우둔하기로 염장군을 무서워할 리가 있소 진나라가 우리 조나라를 함부로 넘보지 못하는 것은 염장군과 내가 있기 때문이오. 두 호랑이가 맞서 싸우면 하나는 반드시 죽고 마는 법이오. 내가 달아나 숨는 것은 나라 일을 소중히 알고, 사사로운 원한 같은 것은 뒤로 돌려버리기 때문이오"

 

  그 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염파는 자신의 못남을 뼈아프게 느꼈다. 웃옷을 벗어 매를 등에 지고 사람을 사이에 넣어 인상여의 집을 찾아가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 

  " 못난 사람이 장군께서 그토록 관대하신 줄을 미처 몰랐습니다."

 

 이리하여 두 사람은 다시 친한 사이가 되어 죽음을 함께 해도 마음이 변하지 않는 그런 사이가 되었다.    ( 卒相與驩  爲刎頸之交 )"

 

  인상여도 위대하지만,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고 순식간에 새로운 기분으로 돌아가 깨끗이 사과를 하는 염파의 과감하고 솔직한 태도야말로 길이 우리의 모범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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