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절불요 - 百折不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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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절불요 - 百折不搖 ]

고사성어

by 우암 2023. 4. 29.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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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백 백 / 꺾일 절 / 아닐 불 / 흔들 요 )

" 백 번 꺾여도 휘어지지 않는다 "라는 뜻으로, 어떠한 어려움에도 굽히지 않는 강인한 정신력과 자세를 가리킬 때 사용되는 말이다.

<유사어> 백절불회(百折不回)

< 출 전 > 후한서. 교현전(橋玄傳)

  후한 때 교현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본래 심지가 굳었던 그는 그릇된 일과 언제나 과감히 맞서 싸웠다. 젊은 시절 현에서 자그마한 벼슬에 있을 때는 양창의 죄악을 적발한 적이 있었으며, 한양 태수로 잇었을 때에는 그의 수하에서 상규령(上圭令)으로 있는 황보정(皇甫禎)이 법을 어기자 즉각 사형에 처한 일도 있었다.

한영제(漢靈帝) 때 상서령 벼슬에 오른 교현은 태중대부 개승(蓋升)이 황제와 친분이 있다는 것을 믿고, 백성들의 재물을 마음대로 횡령한 일을 적발해서 상소하였다.

 

그러나 한영제는 교현의 말을 듣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개승의 관직을 더 높여 주었다.

 이에 분노한 교현은 병을 핑계로 즉시 사직하고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 후 영제는 태위라는 벼슬까지 내렸지만, 그는 끝내 받지 않았다.

 

  또 하루는 교현의 열 살 난 어린 아들이 문 앞에서 놀다가 갑자기 떼강도에게 붙잡혀가 버렸다. 이에 양구(陽球)라는 장수가 이 일을 알고 즉시 군사를 풀어 강도들을 물샐틈 없이 포위했다. 그러나 더 이상 접근하면 강도들이 어린애를 해칠까 싶어 감히 무찌르지 못했다.

  그러자 교현이 화를 벌컥 내며 소리쳤다.

 " 강도는 백성들의 화근인데 어찌 내 아들 때문에 백성들의 화근을 용서한단 말인가."

  그리고는 병사들을 다그쳐서 강도들을 몽땅 체포하였다. 그러나 그의 아들은 결국 강도들에게 살해당하고 말았다.

 

  당시 사람들은 교현의 강건하고 과단성 있는 정신을 높이 찬양하였다.

  교현은 죽은 뒤 남긴 유산이 전혀 없었고, 장례도 극히 간소하게 치러졌다.

 

뒷날 조조(曺操)는 교현의 무덤 앞에서 공경하는 마음으로 제사를 지내 주었고,

채옹(蔡邕)은 < 태위교현비송 太尉橋玄碑頌 >이라는 글을 지어 교현을 "백 번 꺾일지언정 휘어지지 않았고, 큰 절개에 임하여서는 빼앗을 수 없는 풍모를 지녔다. 有百折不搖  監大節而不可奪之風"고 칭송하였는데,

 

바로 채옹이 쓴 비문에서 '백절불요'가 유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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