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송홍은 이렇게 대답했다.
"예부터 가난할 때 사귄 친구를 잊어서는 안되며, 고생을 함께 한 아내를 버려선 안 된다고 했습니다. 제가 이제 벼슬에 올라 부귀를 누린다고 해서 술지게미와 쌀겨를 함께 씹어 먹던 아내를 내칠 수가 있겠습니까 (貧賤之交不可忘 糟糠之妻不下堂 )?"
이 대답을 들은 황제는 송홍이 부인을 버리고 공주를 택할 리가 없음을 깨닫고 공주에게도 송홍을 포기하라고 타일렀다.
송홍은 광무제의 두터운 신임으로 태중대부(太中大夫)에 올랐다. 건무(建武) 2년 대사공(大司空)으로 옮기고, 선평 후(宣平侯)에 봉해졌다. 받은 봉록을 구족(九族)들에게 나눠주어 집에 가산을 남겨 두지 않아 청렴으로 명성을 떨쳤다. 천거한 인재들이 30여 명인데, 모두 나중에 공경(公卿)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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