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음현은 중국 절강성 회계산(會稽山) 북쪽에 있는데, 지금의 소흥(紹興)이다. 이 일대가 유명해진 것은 성어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주 무대이면서 중국의 서예를 집대성한 대서예가 왕희지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그가 지은 불후의 명작 "난정집서(蘭亭集序)"도 바로 이곳에서 씌어졌다.
<유사어> 산음야설 ( 山陰夜雪 )
< 출 전 > 세설신어 ( 世說新語 ) 임탄(任誕) 편
왕희지(王羲之)의 아들 왕휘지(王徽之)가 산음현(山陰縣)에 살았는데, 어느 날 저녁 큰 눈이 왔다. 문득 잠에서 깨어나 문을 열고 술상을 가지고 오라고 하고서 사방천지를 둘러보니 너무나도 밝고 깨끗하였다.
일어나 이리저리 거닐며 좌사(左思)의 초은시(招隱詩)를 읊었다. 문득 친구 대규(戴逵)가 생각 났다. 마침 대규는 섬(剡) 땅에 있었기에 즉시 작은 배를 빌려 타고 친구를 찾아갔다.
날이 샐 때쯤 친구의 집 앞에 도착했는데, 그 집 문 앞에서 발길을 돌렸다. 사람들이 그 까닭을 물으니 왕휘지는 이렇게 말했다.
" 내가 본래 흥이 나서 갔는데 문전에 가서는 흥이 딱 떨어져서 돌아온 것이니 어찌 반드시 그 사람을 보아야만 하는가 ? ( 吾本乘興而行 興盡而返 何必見戴 )"
이것은 일시적인 기쁨은 오래가지 않는다는 뜻으로, 기분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이때부터 산음승흥은 "친구를 방문하는 것"을 뜻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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