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양방벌 - 禪讓放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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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양방벌 - 禪讓放伐 ]

고사성어

by 우암 2023. 11. 20.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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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요할 선 / 양보할 양 / 내칠 방 / 칠 벌 )

 중국 역대 왕조의 역성혁명(易姓革命)의 규범적인 두 가지 방식.

  물려줌과 내침이라는 뜻으로, 고대 중국에서 임금의 자리를 세습하지 않고 덕이 있는 이에게 물려주는 일과, 악정(惡政)을 행하는 제왕을 몰아내어 토벌(討伐) 한 일을 이르는 말이다.

< 출 전 >  "중국인의 역세혁명관(易世革命觀)"

  "선양"은 왕위를 유덕(有德)한 타성(他姓)에게 물려주는 일이고, "방벌"은 무도(無道)한 임금을 추방 토벌하는 일이다.  중국 역대 왕조의 역성혁명(易姓革命)의 규범적인 두 가지 방식을 이르는 말이다.

    유가(儒家)에서 전승한 고대사에 의하면, 요(堯) 임금은 민간의 효자 순(舜)을 사위로 삼고, 불초한 아들인 단주(丹朱)를 제쳐놓고 유덕하며 천명을 받아야 할 순에게 자발적으로 양위하였다. 순임금도 마찬가지로 우(禹)에게 천하를 물려주었으나, 우의  아들 계(啓)는 하왕조(夏王朝)를 세습제로 만들었다.

 

    그러나 걸(桀)에 이르자, 탕(湯)은 무도한 군주인 그를 무력으로 방벌하여 은(殷) 왕조를 일으켰다. 은의 주왕(紂王)도 역시 폭군이어서 주(周)의 무왕은 아버지인 문왕의 업(業)을 이어 은을 멸망시키는 것은 천명에 의한 것이라 하였다.

    맹자는 탕무(武湯)의 무력혁명인 방벌과 요순의 선양을 시인하였다.  그 후 역사상의 혁명은 야심과 실력으로 수행되었으나, 한족(漢族)  또는 한화(漢化)한 북적(北狄) 간의 왕조 교체는 선양의 형식으로 위(魏)의 조비(曺丕)에서 송(宋)의 태조까지 중세에 10여 회 행하여졌다.

 

    선양의 관념은 멀리는 왕망(王莽)의 찬탈이 있었고, 가까이는 청(淸)의 선통제(宣統帝) 퇴위조(退位詔)인 "천하위공(天下爲公)" 이란 말에도 있다. 번거로운 의식과 신비적인 이론의 뒷받침이 따르게 마련이지만, 송 이후의 종족 간의 흥망과는 달리 민중까지 휘말리는 대규모 유혈을 피할 수 있었다.

    중국의 봉건시대에는 선양이 정권교체의 이상적인 형태라고 생각했으므로 실력자가 혁명으로 황제의 자리를 빼앗을 때는 선양의 형식을 취해 새 왕조를 열었다.

 

    중국 역사에는 선양의 형식도 보이나 대부분의 왕조 교체는 농민반란을 배경으로 하는 무력혁명, 즉 방벌이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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