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암도진창 - 暗渡陳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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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도진창 - 暗渡陳倉 ]

고사성어

by 우암 2024. 4. 24.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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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두울 암 / 건널 도 / 펼칠 진 / 창고 창 )


  "남모르게 행동해서 성공했다"라는 뜻으로, 정면으로 공격할 것처럼 위장하여 적의 병력을 그쪽으로 집결시키도록 한 뒤에 방비가 허술한 후방을 공격하여 기습에 성공함을 비유하는 말이다.

< 출 전 > 사기. 고조본기(高祖本紀)

    진(秦)나라가 멸망한 직후 항우(項羽)는 장차 천하를 독차지할 야심을 품고 있었지만, 곁으로는 진나라의 옛 영토를 쪼개서 유방(劉邦) 등 반진(反秦) 장군들에게 영지로 나누어주고 왕의 봉호를 내리는 척하였다. 

그런데 당시 항우는 다른 장수들에 대해서는 별로 염려하지 않았지만, 유방에 대해서는 은근히 우려하는 마음이 있었다.  훗날 자기와 천하를 다툴 사람은 유방밖에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일찍이 진나라가 멸망하기 전이었다. 반진 장군들은 진의 도읍지 함양을 먼저 함락시키는 사람으로 관중왕(關中王)을 삼는다는 약속을 한 일이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함양에 제일 먼저 당도한 사람은 다름 아닌 유방이었다. 

    관중은 오늘날의 섬서성 일대로  진나라에서 오랜 세월 개발한 결과 물산이 풍부한 고장이었으며, 군사적으로도 견고한 요새를 구축한 고장이었다. 이에 항우는 고의로 파촉(巴蜀:사천성)과 한중(漢中:섬서성) 일대를 유방에게 주어 그를 한왕(漢王)에 봉하고는 관중지방을 셋으로 나누어 진나라의 항장(降將)들인 장한. 사마흔. 동의 세 사람에게 떼어주어 유방을 견제하게 하였다. 

 

그리고 항우 자신은 스스로 서초패왕(西楚覇王)이 되어 장강(長江:양자강) 중하류와 회하(淮河) 유역의 비옥한 토지를 차지하고는 팽성을 도읍지로 삼았다.

    한편 유방은 장양(張良)의 계책대로 높은 벼랑에 나무로 가설해 놓은 잔도(棧道)를 모조리 불살라 버렸는데, 그것은 방어의 목적도 있었지만 주로 항우를 속이기 위한 방편이었다.

 

    한중에 도착한 유방은 재능 있는 전략가 한신(韓信)을 대장군으로 삼고 장차 천하를 차지할 계획을 추진하였다.  한신은 우선 관중지방을 빼앗아 항우를 꺾어버릴 근거지로 삼을 계획을 세웠다.  그는 우선 수 백명의 군사를 파견해서 잔도를 중수하는 척하였다.

    이때 관중 서부를 지키고 있던 장한은 그 소식을 듣고 " 수 백명의 군사로는 어림도 없지"하면서 코웃음을 쳤다.  그런데 얼마 안 가서 유방의 대군이 관중으로 쳐들어와 진창을 점령하고 말았다.  이에 장한은 자살하고 사마흔과 동의는 항복하고 말았다.

 

    한신이 군사를 보내 잔도를 수리하게 한 것은 사실 속임수로 그때 그는 유방과 함께 대군을 거느리고 쥐도 새도 모르게 진창을 쳐서 빼앗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겉으로는 잔도를 수리하면서 남몰래 진창을 건넜다 ( 明修棧道  暗渡陳倉 )"는 말이 나오게 되었는데, 흔히 암도진창 또는 진창암도라고도 한다.

 

    그리고 한신은 장양이 잔도를 불태워 버리자고 제의할 때 벌써 이런 계획을 유방에게 올렸다고 한다.  그래서 "영웅들이 보는 바는 대체로 동일하다 ( 英雄所見  畢竟略同 )"는 말도 나오게 되었는데, 나중에 성구 " 영웅소견약동(英雄所見略同)" 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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