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상군자 - 梁上君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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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상군자 - 梁上君子 ]

고사성어

by 우암 2024. 5. 27. 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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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들보 위의 군자"라는 뜻으로, 도둑을 다르게 표현하는 발이다.

< 출 전 > 후한서.  진식전(陳寔傳)

   후한 말, 진식(陳寔)이란 사람은 학식이 풍부하고 성질이 온화한 데다가, 청렴하고 결백해서 모든 시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그가 태구현(太丘懸)의 장관으로 있을 때 일이다.  그의 어질고 청렴한 정치로 고을 사람들은 편한 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해는 흉년이 들어 많은 사람들이 먹을 것이 없어 고통을 겪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도둑이 진식의 방으로 들어와 천정 대들보 위에 웅크리고 앉아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것을 가만히 보고 있던 진식은 곧 의관을 바로잡고 아들과 손자들을 불러들여 그들을 이렇게 훈계했다.

 

   " 대저 사람이란 자기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착하지 못한 일을 하는 사람도 반드시 처음부터 악한 사람은 아니었다. 평소의 잘못된 버릇이 그만 성격으로 변해 나쁜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저 대들보 위의 군자(梁上君子)가 바로 그러하다."

   도둑은 이 말에 깜짝 놀라 얼른 뛰어 내려와 이마를 조아리며 죽여 달라고 사죄를 했다. 진식은 조용히 이렇게 타일렀다.

 

   " 내 그대의 얼굴을 보아하니,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아 보인다. 깊이 반성하여 자기 마음을 이겨내면 착한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다 가난한 탓일 것이다."

  그리고는 그 도둑에게 비단 두 필까지 주고 죄를 용서해 돌려보냈다.  이 일이 널리 알려지자, 고을 안에 도둑질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지금 들어도 감격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그 후로 어느 짓궂은 사람이 쥐를 가리켜서 "양상군자"라 하게 되었다.  그리고 군자(君子)라는 표현도 다소 풍자적이어서 오히려 그것이 맘에 들었는지 후세에 곧잘 쓰이게 되었다. 진식은 진심으로 말하였는지도 모르지만.

      그는 사람의 사정을 잘 이해해 주는 사람이었다. 젊어서부터 현(縣)의 관리가 되어 잡역을 하면서도 언제나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것을 인정받아 태학(太學)에서의 수학을 허락받았다.  한때는 살인 혐의를 받아 구금당한 적도 있다. 물론 죄가 없어 석방은 되었으나, 그가 나중에 순찰관(巡察官)이 되었을 때 자기를 체포했던 자를 찾아 오히려 그를 채용했다고 한다.

 

   그 무렵은 궁중의 환관이 전횡하여 유교를 신봉하는 관료와 심하게 다투어 이것을 탄압한 소위 "당고(黨錮)의 금(禁)"이 있었던 때였다. 진식도 그 탄압으로 체포되었다. 소식을 듣고 다른 사람들은 다 도망쳤으나, 그는 "나까지 도망치면 백성들은 누구를 믿고 살겠는가"하며 기꺼이 포박되었다고 한다. 후에 당고가 풀렸을 때 대사마(大司馬)인 하진(何進) 등이 중앙에 나와 벼슬하기를 권했으나 끝까지 거절했다.

   84세로 그가 죽었을 때 온 나라 안에서 그를 제사 지내는 자가 3만이 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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