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술이부작 - 述而不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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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이부작 - 述而不作 ]

고사성어

by 우암 2024. 1. 28.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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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할, 지을 술 / 어조사 이 / 아닐 부 / 지을 작 )

"기술하기만 할 뿐 창작하지는 않는다."라는 뜻으로, 선인이 업적을 이어 이를 설명하고 서술할 뿐 새로운 부분을 만들어 첨가하지 않는 태도를 말한다.

< 출 전 > 논어. 술이편(述而篇)

    술(述)은 저술이란 뜻이고, 작(作)은 창작이란 뜻이다. 저술은 예부터 내려오는 사상과 문화를 바탕으로 이것을 다시 정리하거나 서술하는 것을 말하고, 창작은 지금까지 일찍이 없었던 새로운 사상과 학설을 처음으로 만들어내는 것을 말한다.

    씨족제 봉건사회의 한 사람이었던 공자는 "태초에 길(道)이 있고, 길은 하늘과 더불어 있었다."라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공자는 만약 태초에 있었던 "길"을 그대로 현실사회에 부활할 수가 있다면 이 세상은 바로 "황금시대"가 된다고 확신하여 이 "길"의 모습을 알고자 하는 데 전심하였던 것이다. 태초의 일이었기 때문에 "길"은 당연히 옛날에서 찾지 않으면 안 된다.

 

   <논어> 술이편에, "공자가 말하기를,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이것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옛 것을 좋아하여 열심히 구하였다는 것이다."라는 말이 그간의 소식을 말해 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위정편에, "공자가 말하기를, 옛것을 배우고 거기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溫故知新) 사람 같으면 선생으로 섬겨도 좋다."라고 있어, 공자가  태초에 있던 "길"을 중심으로 추구하였던지가 상상된다.

 

  공자는 이 성과를 제자들에게 강술하였을 뿐 아니라, <시경>이나 <서경>을 오늘의 형태로 정리하고 <춘추>를 편찬하였으며, "예(禮)"나 "악(樂)을 제정하여 후세에 전했다고 되어 있지만, 태초에 있었던 "길"을 있는 그대로 현실사회에 실현하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거기에는 공자 자신의 개인적인 자의(恣意)는 가해지지 않았다. 

공자는 어떤 경우일지라도 오직 자기 자신이 "일찍이 실재하였다."라고 믿었던 그대로를 조술(祖述)하고 있는 것이다. 

 

  <논어> 술이편 첫머리에,

"공자는 말하기를, 나는 서술할 뿐  창작하지는 않으며 옛것을 믿고 좋아하는 자세를 가만히 우리 노팽과 비교하고 싶다. ( 子曰. 述而不作.  信而好古.  信而好古.  竊比於我老彭 )

 

  여기 나오는 노팽이란 사람은 은(殷)나라의 어진 대신이라고 하는데, "술이부작"이란 말 자체도 어디까지나 자신을 비교해 본다는 것은 남을 배운다는 똑같은 겸손한 태도에서 나온 말이다.

  사실상 공자가 이 같은 말을 한 것은 창작을 부정하려는 뜻에서가 아니다. 옛것을  제대로 음미도 못한 채, 옛것의 테두리를 벗어나지도 못한 것을 마치 자기가 새로 창안해 낸 것 같은 착각에 빠져 있는 그런 젊은 후배들을 깨우쳐 주기 위해 한 말일 것이다.

 

 "온고지신(溫故知新)" 이란 공자의 말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옛것을 완전히 내 것을 만듦으로써 새로운 것을 알게 되는 것이 "온고지신"인 것이다.  거기까지 미치지 않은 사람은 남의 스승이 될 수 없다고 공자는 덧붙여 말하고 있는 것이다.

 

    참다운 창작은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옛것과 남의 것을 거름으로 해서 자연히 피어난 꽃과 맺어진 열매가 창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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